"전략가는 문(文)·무(武)·부(富) 갖춰야…패러다임 변혁이 진짜 승리"
“어떤 집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습니다. 이 집안에선 며느리가 참 똑똑해서 시어머니를 항상 이깁니다. 자, 과연 시어머니와 며느리 중 누가 더 훌륭한 전략가일까요?”

국내 전략이론 부문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겸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사진)은 최근 서울 여의도동 전경련회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기자에게 이같이 물었다. 대답을 머뭇거리는 사이 그는 “져주는 시어머니야말로 진정한 전략가”라고 답했다.

“시어머니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누르려는 며느리를 감싸는 것입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국가든 ‘싸움 없는 싸움’에서 이길 줄 아는 게 진짜 승리죠.”

송 명예교수는 지난달 말 자신이 연구해온 전략이론의 핵심을 담은 저서 ‘전략의 신’을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손자의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등 병서(兵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세계 각국의 전략 전문가로부터 얻은 가르침을 설파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과 미국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 중국의 유명 손자병법 연구가 리링, 베트남의 전쟁영웅 보응우옌잡 등 다양한 인물을 만났다.

송 명예교수는 “문(文)과 무(武), 부(富)의 균형을 모두 갖춘 유연한 전략가가 되자”고 강조한다. 그는 “이론이 ‘문’이라면 전략은 ‘무’, 성과는 ‘부’에 해당한다”며 “한국은 어느 분야에서든 이론만 너무 강조하며 실제 현실에서 쓰이는 전략은 그저 ‘싸움의 기술’ 정도로 폄하하고, 그 성과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의 각종 경제학원론 교과서에선 1 대 1 경쟁만을 가정하지만 세상은 많은 사람이 서로 엮여 경쟁이 얽히고설킨다”며 “개인과 기업, 국가 모두 전략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각종 전략을 필수적으로 익히며 활발히 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 명예교수가 추천한 최고의 전략서는 ‘손자병법’이다. 그는 “손자병법의 이름을 내건 실용서가 많이 나와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대부분 ‘손자병법’과 ‘삼십육계’가 서로 다른 책이란 걸 모른다”며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차도살인·借刀殺人)’느니, 미인계니 하는 말은 ‘삼십육계’에 나온다”고 설명했다. ‘삼십육계(三十六計)’는 중국 고대부터 내려오는 전술을 묶은 책으로, 17세기 명나라 말~청나라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송 명예교수는 “‘손자병법’이 추구하는 가치는 ‘온전할 전(全)’이란 한 글자로 압축된다”며 “전쟁이라는 잔인한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지키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보호하는 게 최고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또 “‘손자병법’의 정신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와 일맥상통한다”며 “이런 점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략 전문가들이 ‘손자병법’을 최고의 전략서로 손꼽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략이란 무엇일까. 송 명예교수는 “기존 전략을 뛰어넘는 ‘초(超) 전략’을 추구해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패러다임을 바꾸고, 그것을 위한 실질적 전략을 짜고, 전략 실천을 위한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패러다임이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송 명예교수는 반문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면 과연 그런 영웅적 기업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전략 위의 전략, 그것이 진정한 전략가의 정신입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