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헤지 수단도 투기로 '낙인'…1조 넘던 ELW 거래대금 95%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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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10년 역주행' (4) 규제에 질식당하는 파생상품시장
파생시장 불균형 부작용
ELS 시장만 비대해져 증시 박스권 횡보 부추겨
코스피200 옵션 거래도 고점 대비 10분의 1 토막
금융당국은 여론 눈치만
파생시장 불균형 부작용
ELS 시장만 비대해져 증시 박스권 횡보 부추겨
코스피200 옵션 거래도 고점 대비 10분의 1 토막
금융당국은 여론 눈치만
▶마켓인사이트 6월18일 오후 3시48분
한국 파생시장의 추락은 금융당국의 보신주의와 파생시장을 도박판으로 오판한 일부 여론의 ‘합작품’이다.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은 고사(枯死) 직전이고 주식 및 주가지수 선물·옵션도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음지 불법시장으로 숨고 전문투자자들은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가는 등 갈수록 부작용이 늘고 있다.
◆“선배가 만든 규제를 어떻게…”
2005년 말 등장한 ELW는 적은 돈으로 투자(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보유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식 및 투자자산의 유용한 헤지 수단이기도 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007년 2757억원에서 2010년 1조6374억원으로 6배가량 불어났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2010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고강도 ‘건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투기 거래로 시장이 과열됐다는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유동성 공급자(LP)인 증권사의 호가를 제한하는 조치 등을 시행한 것.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804억원)은 2010년 대비 5%로 급감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금융위 전 고위 관계자는 “선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가 만든 규제를 후배가 되돌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규제 철회에 따른 여론의 뭇매는 또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ELW 침체는 파생시장이라는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ELW 거래가 위축되는 사이 비대해진 주가연계증권(ELS)이 주식시장의 박스권 장세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ELW는 주식시장의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해 변동성을 키우지만 ELS는 주가가 일정 수준 안에 머물면 이익을 주는 구조라 변동성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중 유동자금이 제한된 상황에서 ELW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ELS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ELS 발행 규모는 2010년 25조원에서 지난해 71조7967억원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승덕 대신증권 전무는 “지금이라도 ELW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ELS가 주도하는 시장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인투자자 진입장벽 너무 높아
국내 대표 파생상품인 코스피200선물·옵션 거래도 정부 규제 때문에 빠른 속도로 줄었다. 코스피200선물의 월간 거래량(5월 기준 278만1421계약)은 2011년 8월 고점(1043만3537계약) 대비 73.3% 감소했다. 코스피200옵션의 월간 거래량(5월 기준 4077만계약)도 2010년 11월 고점(4억1780만계약)에서 90.2% 쪼그라들었다. 세계 1위 시장을 기록하던 두 상품의 거래량은 2001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금융위가 2011년 8월 증거금 없이도 옵션을 매수할 수 있는 ‘옵션매수전용계좌’를 폐지한 것이 시장 위축을 가져왔다. 이듬해 3월에는 코스피200옵션의 거래단위(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5배 인상했다. 소액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높여 투기성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갈 곳을 잃은 소액투자자들이 불법적인 선물·옵션계좌 대여업체로 옮겨가면서 음성적 거래가 폭증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4월 적발한 계좌 대여업체를 알선한 미인가 중개업체만 169곳에 이른다.
금융위는 파생시장 거래량이 급감하자 다시 규제 완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업계는 다음달 코스피200선물·옵션 대비 거래단위를 5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인 미니선물·미니옵션을 출시한다. 하지만 종전에 없던 진입 규제가 더해진 상황이라 거래량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진입 규제를 강화한다고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불완전 판매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주가연계증권(ELS)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 대부분 주가지수의 등락 구간에 따라 수익률이 차이 난다.
■ 주식워런트증권(ELW)
개별 주식 또는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매매 시점과 가격에 살 수 있거나(콜) 팔 수 있는(풋) 권리가 주어진 유가증권. 기초자산의 가격이 만기 때 행사 가격보다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한국 파생시장의 추락은 금융당국의 보신주의와 파생시장을 도박판으로 오판한 일부 여론의 ‘합작품’이다. 주식워런트증권(ELW) 시장은 고사(枯死) 직전이고 주식 및 주가지수 선물·옵션도 점차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음지 불법시장으로 숨고 전문투자자들은 해외시장으로 빠져나가는 등 갈수록 부작용이 늘고 있다.
◆“선배가 만든 규제를 어떻게…”
2005년 말 등장한 ELW는 적은 돈으로 투자(레버리지) 효과를 누리는 동시에 보유 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주식 및 투자자산의 유용한 헤지 수단이기도 했다.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2007년 2757억원에서 2010년 1조6374억원으로 6배가량 불어났다.
하지만 금융위원회가 2010년 10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고강도 ‘건전화 조치’를 시행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투기 거래로 시장이 과열됐다는 비판 여론이 쏟아지자 유동성 공급자(LP)인 증권사의 호가를 제한하는 조치 등을 시행한 것. 지난해 하루 평균 거래대금(804억원)은 2010년 대비 5%로 급감했다.
금융당국은 이런 부작용을 알면서도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다. 금융위 전 고위 관계자는 “선배(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가 만든 규제를 후배가 되돌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며 “규제 철회에 따른 여론의 뭇매는 또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ELW 침체는 파생시장이라는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ELW 거래가 위축되는 사이 비대해진 주가연계증권(ELS)이 주식시장의 박스권 장세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ELW는 주식시장의 상승 또는 하락에 베팅해 변동성을 키우지만 ELS는 주가가 일정 수준 안에 머물면 이익을 주는 구조라 변동성을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시중 유동자금이 제한된 상황에서 ELW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ELS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ELS 발행 규모는 2010년 25조원에서 지난해 71조7967억원으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유승덕 대신증권 전무는 “지금이라도 ELW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ELS가 주도하는 시장 불균형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인투자자 진입장벽 너무 높아
국내 대표 파생상품인 코스피200선물·옵션 거래도 정부 규제 때문에 빠른 속도로 줄었다. 코스피200선물의 월간 거래량(5월 기준 278만1421계약)은 2011년 8월 고점(1043만3537계약) 대비 73.3% 감소했다. 코스피200옵션의 월간 거래량(5월 기준 4077만계약)도 2010년 11월 고점(4억1780만계약)에서 90.2% 쪼그라들었다. 세계 1위 시장을 기록하던 두 상품의 거래량은 2001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금융위가 2011년 8월 증거금 없이도 옵션을 매수할 수 있는 ‘옵션매수전용계좌’를 폐지한 것이 시장 위축을 가져왔다. 이듬해 3월에는 코스피200옵션의 거래단위(승수)를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5배 인상했다. 소액 개인투자자의 진입장벽을 높여 투기성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갈 곳을 잃은 소액투자자들이 불법적인 선물·옵션계좌 대여업체로 옮겨가면서 음성적 거래가 폭증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4월 적발한 계좌 대여업체를 알선한 미인가 중개업체만 169곳에 이른다.
금융위는 파생시장 거래량이 급감하자 다시 규제 완화 정책을 들고 나왔다. 업계는 다음달 코스피200선물·옵션 대비 거래단위를 50만원에서 10만원으로 줄인 미니선물·미니옵션을 출시한다. 하지만 종전에 없던 진입 규제가 더해진 상황이라 거래량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진입 규제를 강화한다고 투자자 보호가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불완전 판매나 불공정 거래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주가연계증권(ELS)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투자수익이 결정되는 유가증권. 대부분 주가지수의 등락 구간에 따라 수익률이 차이 난다.
■ 주식워런트증권(ELW)
개별 주식 또는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매매 시점과 가격에 살 수 있거나(콜) 팔 수 있는(풋) 권리가 주어진 유가증권. 기초자산의 가격이 만기 때 행사 가격보다 높은지 낮은지에 따라 수익이 결정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