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병원 '다인실 70% 의무화' 재검토 논의 착수
정부가 대형 병원의 다인실(4~6인실) 비중을 높이려고 했던 당초 정책을 대폭 수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다인실이 감염관리와 위생에 취약하다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1~2인실을 다인실로 바꾸는 공사 등을 준비하던 병원들은 정부의 정책 수정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본지 6월22일자 A1,4,5면 참조

손영래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24일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의 다인실 문화가 병원 내 감염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 거세졌다”며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의 일반병상 의무 확보 비율을 70%로 높이기로 한 방침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밝혔다. 일반병상이란 환자가 비급여인 상급병실 차액을 내야 하는 상급병상(1~3인실 병상)과 달리 건강보험에서 정한 최저 입원료만 내면 되는 병상이다. 4인실 이상의 다인실 병상이 여기에 해당한다. 복지부는 오는 9월부터 상급종합병원 등의 일반병상 의무 확보 비율을 50%에서 7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었다.

일반병상 확대계획은 국민의 상급병상 이용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마련됐다. 대형 병원에 일반병상이 부족한 탓에 환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1~2인실에 입원해 비싼 입원료를 부담하는 게 문제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상급병실료는 국민 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선택진료비·간병비와 함께 손질하기로 한 3대 비급여 항목 중 하나다. 복지부는 지난해 7월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달 9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다인실에 대한 여론은 바뀌기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병상 여러 개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인실은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9월부터 당초 계획을 실행할 생각이었지만 메르스 사태로 1~2인실 병상의 역할이 주목받게 됐다”며 “다인실 병상 확대를 바라던 여론이 바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계획을 전면 철회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급병실료 등 3대 비급여 개선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데다 값싸게 이용할 수 있는 병상에 대한 환자들의 수요 역시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입법예고 기간에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시행 시점이나 내용 등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반병상 70% 확보 의무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던 주요 병원은 일단 추이를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1~2인실 몇 개를 통합해 다인실로 바꾸는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잠정 중단했다. 이 병원은 무균병실과 중환자실 등 특수병상을 제외한 2010개 병상 중 일반병상이 1273개(63.3%)로 70%를 맞추기 위해서는 130여개의 일반병상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일반병상 비중이 57.1%인 서울아산병원과 61.8%인 서울대병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형 병원 관계자는 “다인실을 늘리는 건 감염관리 강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인 데다 입원 치료 중인 환자를 공사 기간에 내보내기도 어려워 진퇴양난”이라고 밝혔다.

마지혜/이준혁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