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종군기자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향하는 종군기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걸까. 진실을 알리기 위해? 기자정신에 투철해서? 명예 혹은 돈을 위해? 단순히 호기심으로? 아마 이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포탄이 날아가고 피가 튀며 머리털이 쭈뼛 서는 극한 상황은 말할 수 없는 공포와 동시에 때로는 묘한 짜릿함도 느끼게 한다. 그런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져 생생한 이야기와 사진 및 영상을 기록하고 싶다는 꿈은 기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꾸게 마련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진격 때 탱크 위에서 생생한 현장을 중계하던 CNN의 월터 로저스나 종군 및 재난 전문기자로 CNN의 간판 앵커가 된 앤더슨 쿠퍼는 종군기자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최초의 직업 종군기자로는 19세기 중반 크림전쟁을 취재한 영국 더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이 꼽힌다. 이후 숱한 기자들이 그 뒤를 이었다. 여성 최초의 퓰리처상 수상자 마거릿 히긴스는 6·25 종군기자 중 가장 잘 알려졌다.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도쿄특파원이던 그는 6개월간 전장을 누빈 경험으로 ‘한국에서의 전쟁(War in Korea)’을 써 퓰리처상를 받았다. 사진기자 중에는 2차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리즈로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가 워낙 유명하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국내에도 개봉돼 인기를 끈 영화 ‘천 번의 굿나잇’은 인간으로서의 종군기자의 고뇌를 잘 묘사한 작품이다. 아내이자 엄마인 여성 종군 사진기자 레베카(쥘리에트 비노슈 분)는 기자로서 직업적 사명감과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갈등한다. 무엇보다 큰 위협은 신변 안전이다. IS에 의해 지난해와 올해 희생된 미국과 일본인 종군기자 제임스 폴리와 고토 겐지만 봐도 그렇다. 앞서 2차대전에서 69명, 베트남전에서는 63명이 목숨을 잃었다. 유고슬라이바 내전에서는 49명, 알제리 내전 57명, 그리고 2003년 후 이라크에서 죽은 기자는 100명을 넘는다.

오늘 발발 65주년을 맞은 6·25전쟁 동안 유명을 달리한 종군기자는 모두 23명이다. 이 중 한국인은 한규호 서울신문 기자뿐이다. 이후 한국인 종군기자로 순직한 케이스는 최병우 코리아타임스 기자(1958년 중국·대만 간 무력분쟁 취재 중 실종)가 유일하다. 언론인 희생이 많지 않은 건 다행이다. 그러나 “유달리 목소리 큰 한국 기자가 유독 위험지대에는 안 간다”는 비아냥도 없지는 않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