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입찰 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특히 15년 만에 신규 허가를 내주는 서울시내 면세점은 3곳 입찰에 21개 업체가 몰릴 만큼 과열 양상이다. 인천공항 면세점은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진출 희망업체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매출 8조3000억원으로 4년 새 두 배로 성장했고 올해 10조원을 바라보니 그럴 만도 하다. 20년 전 웬만한 기업들은 다 뛰어들었던 통신사업자 선정 때가 떠오른다.

2020년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달성을 위해선 면세점 인프라 확충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해외 대형 면세점과 경쟁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면세점 육성을 강조한 이유다. 하지만 관세청의 입찰 심사평가표를 보면 황당함을 금할 수 없다. 33개 세부 평가항목 중 13개가 사회공헌이다. 자선사업, 임직원 사회봉사 실적, 기부금 비율에다 심지어 지역여론까지 들어 있다. 총 1000점 중 300점이 배정돼 당락을 가를 정도다. 경쟁력 있는 면세점을 뽑자는 것인지, 소위 ‘착한 기업’ 선발대회를 여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평가기준이 이런 식이니 참가기업들의 무리수도 잇따르고 있다. 시내면세점 입찰에 나선 이랜드가 면세점 순이익의 10%,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영업이익의 20%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는 총 투자비의 절반인 3000억원을 동대문 상권 활성화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했다. 인천공항 면세점 DF11 구역 입찰에 참여하는 삼익악기는 이익금의 무려 50%를 사회환원에 쓰겠다고 한다.

세계 최고 면세점을 만들거나 관광객을 유치하는 계획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희한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면세점 사업이 잘되면 정상적으로 세금을 더 걷으면 된다. 정부가 기부금 경쟁을 종용하는 이런 장면은 한국 경제가 망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참여기업들도 면세점과 자선사업을 혼동하는 것이라면 아예 사업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기업의 가치는 기업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학예회인가 기업 경쟁인가.

면세점은 백화점과 달리 재고를 떠안고 판매하는 구조여서 초기투자금이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2000억원까지 든다고 한다. 5년마다 재입찰도 거쳐야 한다. 중소·중견기업 신규 면세점 13곳 중 5곳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면허가 회수됐다. 심지어 한진 애경 같은 대기업조차 손들었을 정도다. 따라서 사업역량을 철저히 검증해도 부족할 판에 기부금이나 자선사업 등으로 평가하겠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면세점의 ‘업(業)의 본질’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메르스 여파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면세점 시장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장밋빛 전망만 믿고 뛰어들었다가 낭패 보기 딱 좋은 구조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이 25%에 불과하고 일본에 관광객 유치를 역전당한 판이다. 면세점 확충은 관광인프라 개선이란 큰 그림 아래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치권 일각에선 재벌 특혜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억지 논리로 딴지를 걸고, 정부는 ‘착한 면세점’으로 면피에 급급하고 있다. 한심한 경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