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합병 반대하면 결국 엘리엇 손 들어주는 셈
주가도 동반 급락 가능성
경영권 방어 취약한 한국기업…해외 헤지펀드의 먹잇감 전락
삼성 "양사 합병 시너지 커…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 기대"
삼성물산 지분 7.12%를 확보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을 규합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물산 지분 10.15%(보통주 기준)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합병 성패를 좌우할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SK와 삼성의 합병 조건, 주변 상황 등이 많이 달라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단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합병 불발 시 주가 동반 급락”
우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건은 SK와 달리 자사주 소각과 같은 이슈가 없다. SK의 경우 24%에 달하는 자사주를 합병 발표 시점에 사실상 소각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게 국민연금이 반대 결정을 하는 빌미가 됐다. 합병이 불발될 경우 제일모직-삼성물산 주가가 동반 급락할 가능성이 큰 것도 국민연금엔 부담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외에 제일모직 지분도 4.6%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증권 전문가들은 “합병 발표 당시 양사 주가가 일제히 급등한 점에 비춰볼 때 합병 무산은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국민연금의 투자 수익률도 하락할 수밖에 없어 합병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SK는 우호 주주들이 많아 국민연금이 반대하더라도 합병안이 통과될 수 있지만, 삼성 측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최근 자사주를 인수한 KCC를 포함하더라도 20% 남짓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반대로 삼성 합병안이 무산될 경우의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더욱이 삼성은 엘리엇이라는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외국계 투기자본과 공동보조를 취할 경우 다음 ‘먹잇감’을 노리는 다른 해외 헤지펀드들도 한국 기업들에 눈독을 들일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했다.
삼성은 또 SK가 SK(주)와 SK C&C의 ‘옥상옥(屋上屋)’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합병을 선택한 것과 달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합병 목적과 시너지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의결권 행사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합병 가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신중히 판단해야”
다만 국민연금기금이 의결권 행사를 스스로 하지 않고 이번 SK 건처럼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또다시 넘길 경우 이 같은 경제·경영 논리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안팎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외부 의결권 자문기관과 다른 의견을 낸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놨다. 국제 의결권행사자문기구인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은 이번 합병에 찬성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찬우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국민대 교수)은 “국민연금기금이 ISS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를 뒷받침할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