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국회법 개정안 파문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국회법 개정안 파문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6일 한껏 몸을 낮췄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며 유 원내대표를 지목해 강도 높게 비판한 지 하루 만에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공개 사과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친박근혜(친박)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며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여 갈등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죄송… 송구… 죄송… 반성

유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이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점에 대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여야 협상 과정에서 공무원연금 개혁법안과 국회법 개정안이 연계된 것을 비판한 데 대해서도 “원내대표로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것은 훗날 박근혜 정부의 개혁과제로 길이 남을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며 “대통령도 100% 만족스럽지는 못하겠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의 국회 통과를 가장 절실히 원했던 것으로 믿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통령도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날 박 대통령에게 “송구하다”고 말한 데서 한층 더 몸을 낮춘 것이다.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며 당·청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어제 의원총회에서 유 원내대표가 원내대표직을 유지할 명분을 얻은 만큼 청와대와의 관계회복을 위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 역시 “(청와대와는) 아직 연락하지 못했지만 주말에 자연스럽게 해보겠다”고 말했다.

◆“신뢰 무너져…사과로 해결 안돼”

하지만 당·청 관계가 당장 복원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당과 청와대 안팎의 공통된 시선이다. 청와대로선 유 원내대표의 사과 발언에도 불구하고 유 원내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이 냉랭하다.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향후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가 당쪽 파트너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선 유 원내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전날 발언이 불신임을 뜻하는데도, 전날 여당 의원총회에서 원내 지도부를 ‘재신임’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에 불만이 적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제대로 읽었다면 스스로 본인의 거취를 정해야 한다는 기류가 여전히 강하다”며 “박 대통령은 국민 신뢰를 저버리는 정치인은 안 된다는 단호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박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에 대해선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당·청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는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승부수를 던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靑-유승민 관계는 깨진 유리잔”

친박계는 ‘유승민 퇴진’을 재차 주장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겸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의총 결과를 보고 당·청 관계의 심각성에 대해 의원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는) 일단락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현 최고위원은 “유 원내대표와 청와대 간 신뢰는 이미 무너졌으며, 깨진 유리잔”이라고 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친박계 최고위원의 동반사퇴를 통한 지도체제 와해와 박 대통령 또는 친박계 의원들의 연쇄 탈당을 통한 정계 개편 등도 거론한다. 이장우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것이 원활한 당·청 관계를 위해 좋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