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안정' 목소리 내는 한은…"가계빚·좀비기업·ELS 집중 관리해야"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급증과 한계기업 증가, 금융투자상품으로의 급격한 자금이동을 금융시장의 세 가지 위험요인으로 지적했다. 30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서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한계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을 강력히 요청했다. 금융투자상품의 잠재적 리스크에 대해서는 ‘선제적인 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계부실 위험지수를 따로 개발하기도 했다. 한은이 작년 8월 이후 기준금리를 네 차례 내리며 ‘거시경제안정’에 주력했던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금융부문 안정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고등 켜진 가계부채

한은이 가장 공을 들여 분석한 부문은 ‘가계부채’ 문제다. 가계의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과 ‘자산 대비 총부채 비중’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치화한 ‘가계부실 위험지수’를 개발해 이번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처음으로 활용했다.

한은은 가계부실위험지수가 100 이상인 가구를 ‘부실위험가구’로 정의했다.

부실위험가구 비중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부채보유가구(1090만5000가구) 중 부실위험가구 비중은 10.3%(112만2000가구)로 집계됐다. 이 비중은 2012년 9.4%에서 2013년 10.2%로 커진 데 이어 작년에도 상승세를 지속했다. 작년 말 기준 부실위험가구의 부채액은 전체 부채액의 19.3%에 해당하는 143조원에 달한다.

소득과 자산이 적은 취약계층이 부실위험가구에 대거 포함됐다. 전체 부실위험가구 중 소득이 적은 1~2분위(하위 40%) 가구 비중은 55.4%에 달했다. 한은은 향후 금리가 오를수록 부실위험가구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리가 향후 3%포인트 오르면 부실위험가구 비중은 10.3%에서 14.0%로 높아지고 위험부채비율은 30.7%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만약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서 주택가격이 10% 하락하는 ‘복합 충격’이 발생할 경우 위험가구 비율은 14.2%로, 위험부채비율은 전체 부채의 32.3%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체 기업의 15%는 한계기업

제 힘으로 살아남을 수 없어 정부 지원 등에 의존해 연명하는 ‘한계기업’도 금융안정의 뇌관이 되고 있다는 게 한은의 평가다. 한은은 2014년 기준으로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비율(이자비용 대비 영업이익)이 100% 미만인 기업들을 한계기업으로 정의했다. 한계기업은 2009년 2698개(12.8%)에서 2014년 말 3295개(15.2%)로 증가했다.

한계기업 중 대기업 비중도 증가추세다. 전체 대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009년 9.3%에서 2014년 14.8%로 빠르게 증가했다. 중소기업 한계기업 비중(2014년 15.3%)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계기업의 질도 악화되고 있다. 한계기업들의 매출은 2012년 이후 3년 연속 줄었다. 기업 수익성의 대표 지표인 매출영업이익률(매출 대비 영업이익 비중)은 2009~2014년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한계기업들은 ‘물건을 팔수록 손해’란 의미다. 부채비율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다. 2009년 한계기업의 부채비율은 213.6%지만 2014년엔 222.5%로 높아졌다. 일반기업의 부채비율이 같은 기간 95.1%에서 79.2%로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돈은 못 벌면서 지원을 받아 부채만 늘어난 탓이다. 한은은 “한계기업이 많아질수록 기업 전체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잠재적 투자리스크에 대비해야

한은은 초저금리 기조 때문에 투자가 급증하고 있는 주가연계증권(ELS) 채권형펀드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해서도 ‘잠재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은이 우려하는 것은 금리 상승이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나 ELS 등을 판매하는 증권사들은 금융투자상품을 팔아 들어온 돈을 회사채 국채 등 채권에 투자한다.

예컨대 작년 ELS 파생결합증권(DLS) 판매금액의 57.0%는 국공채와 회사채에 투자되고 대고객 환매조건부채권(RP) 판매금액은 모두 채권에 투자됐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가격이 떨어져 회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채권형펀드에 투자한 일반투자자들 역시 손실을 피해갈 수 없다.

지난 3월 말 기준 머니마켓펀드(MMF), ELS, DLS, 펀드, 특정금전신탁, 대고객 RP 등 금융투자상품 잔액은 877조5000억원으로 2014년 말(808조9000억원) 대비 78조6000억원 급증했다. 시중유동성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이후 처음으로 30%를 넘었다. 가계의 2014년 기준 금융투자상품 비중은 6.8%에 불과하지만 저축성예금의 비중이 줄고 금융투자상품과 보험 연금의 비중이 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한은의 지적이다.

한은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융안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목해야 한다”며 “금융투자상품에 내재된 수익 및 리스크 요인을 정확히 파악·관리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