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문단에도 시장경제 훈련받은 사람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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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과 싸우며 장편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 6권 완간
중세에 현대 지식이 퍼지면서
변모하는 사회 모습 그린 게
제겐 가슴 벅찬 모험이었죠
중세에 현대 지식이 퍼지면서
변모하는 사회 모습 그린 게
제겐 가슴 벅찬 모험이었죠
2012년 봄 소설가 복거일 씨(69·사진)는 병원에서 머리 사진을 찍었다. 2년 전 머리 뒤쪽 혈관에 동맥경화 증세가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그동안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검사 결과 머리엔 증세가 없었다. 대신 폐에 반점이 있는데 종양처럼 보이니 가슴 사진을 찍어보라고 의사는 권했다. 사진을 찍어보니 간암이었다. 이미 횡격막과 폐로 전이됐다고 했다.
간암 말기라는 진단에 충격을 받은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럼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쩌지’였다. 199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세 권을 먼저 출간하고 곧 후속편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독자를 잃은 아픔이 의식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병원을 나오면서 ‘항암치료로 연명하기보다는 글을 쓰겠다. 스무해 넘게 손대지 못한 작품을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적 무협소설’로 불리는 《역사 속의 나그네》가 1일 전 6권으로 완간됐다. 1988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이후 27년 만이다. 복씨는 이날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완간을 결심했던 3년여 전을 회고하며 “마지막 싸움에 나선 심정으로 후속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여년간 별별 전화를 다 받았어요. 어떤 독자로부터는 ‘후속편을 기다리다 지쳤다. 당신 사기꾼이야’라는 얘기까지 들었죠. 마음속에 큰 빚으로 남아 있었어요. 죽음과 경주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집중하게 했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 권을 써서 끝냈습니다.”
이 책은 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26세기에서 날아온 시낭 ‘가마우지’를 타고 과거로 백악기 탐험을 떠났다가 1570년대 조선사회에 좌초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16세기 조선이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이언오는 자신만의 지식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 또 저수지 사업을 벌여 농경사회를 이롭게 하고, 군사를 조직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저는 이 작품을 지적 무협소설이라 부릅니다. 주인공이 지닌 무기가 ‘장풍’이 아니라 ‘과학 지식’이라면 소재가 좁고 기법이 비슷한 무협소설보다 얘기가 더 재미있고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치가 높으리라고 생각했죠. 중세사회에 현대 지식이 퍼져나가면서 사회가 변모하는 모습을 자세히 그린다는 것은 가슴 벅찬 모험이었습니다.”
‘시간여행자’ 이언오는 과학뿐 아니라 미래의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5일장을 상설시장으로 만들고, 화폐를 발행해 물물교환 위주인 거래를 원활하게 한다. 관노를 해방시켜 토지를 나눠주며 재산권 개념도 심어준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 저는 문단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논객으로서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이념논쟁을 벌였어요. 당시 문학에서는 노동자·농민이 잘사는 사회주의 이상향을 세우자는 주장을 담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스미는 작품이 많아 나왔어요. 저도 논쟁뿐 아니라 소설을 통해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에 종사하면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최근 문단을 달구고 있는 ‘문학 권력’ 논란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그는 “권력관계로 바라보는 틀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빈부·노사 문제 등을 권력의 개념으로만 보는 1980년대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문단도 시장경제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이 없어요. 이번에 표절 시비가 붙은 신경숙 씨는 문단에 시장경제 개념을 도입한 작가로 볼 수 있어요. 문학동네가 신씨에게 거액의 선금을 주고 스카우트했을 때 문학과지성사에서 키운 작가가 돈에 팔려 가느니 하며 비판이 일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학비평가들도 이젠 경제원론쯤은 읽고 비평을 해야 합니다.”
건강에 대해 묻자 그는 “건강이 나빠지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작가에겐 글을 못 쓰는 게 죽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시집 두 권을 더 낼 생각입니다. 이미 다 써서 (출판사에) 맡겨 놨어요. 한 권은 생전에, 한 권은 사후에 출간할 계획입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면 이번 작품에 담지 못해 아쉬웠던 임진왜란을 그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간암 말기라는 진단에 충격을 받은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럼 《역사 속의 나그네》는 어쩌지’였다. 1991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세 권을 먼저 출간하고 곧 후속편을 내놓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독자를 잃은 아픔이 의식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병원을 나오면서 ‘항암치료로 연명하기보다는 글을 쓰겠다. 스무해 넘게 손대지 못한 작품을 끝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적 무협소설’로 불리는 《역사 속의 나그네》가 1일 전 6권으로 완간됐다. 1988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이후 27년 만이다. 복씨는 이날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완간을 결심했던 3년여 전을 회고하며 “마지막 싸움에 나선 심정으로 후속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여년간 별별 전화를 다 받았어요. 어떤 독자로부터는 ‘후속편을 기다리다 지쳤다. 당신 사기꾼이야’라는 얘기까지 들었죠. 마음속에 큰 빚으로 남아 있었어요. 죽음과 경주한다는 생각은 마음을 집중하게 했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세 권을 써서 끝냈습니다.”
이 책은 2070년대 인물 이언오가 26세기에서 날아온 시낭 ‘가마우지’를 타고 과거로 백악기 탐험을 떠났다가 1570년대 조선사회에 좌초해 살아가는 이야기다. 16세기 조선이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이언오는 자신만의 지식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 또 저수지 사업을 벌여 농경사회를 이롭게 하고, 군사를 조직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저는 이 작품을 지적 무협소설이라 부릅니다. 주인공이 지닌 무기가 ‘장풍’이 아니라 ‘과학 지식’이라면 소재가 좁고 기법이 비슷한 무협소설보다 얘기가 더 재미있고 문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치가 높으리라고 생각했죠. 중세사회에 현대 지식이 퍼져나가면서 사회가 변모하는 모습을 자세히 그린다는 것은 가슴 벅찬 모험이었습니다.”
‘시간여행자’ 이언오는 과학뿐 아니라 미래의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5일장을 상설시장으로 만들고, 화폐를 발행해 물물교환 위주인 거래를 원활하게 한다. 관노를 해방시켜 토지를 나눠주며 재산권 개념도 심어준다.
“연재를 시작할 무렵 저는 문단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논객으로서 이곳저곳에 불려다니며 이념논쟁을 벌였어요. 당시 문학에서는 노동자·농민이 잘사는 사회주의 이상향을 세우자는 주장을 담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스미는 작품이 많아 나왔어요. 저도 논쟁뿐 아니라 소설을 통해 개인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에 종사하면 사회가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최근 문단을 달구고 있는 ‘문학 권력’ 논란에 대해서도 말문을 열었다. 그는 “권력관계로 바라보는 틀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며 “빈부·노사 문제 등을 권력의 개념으로만 보는 1980년대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문단도 시장경제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이 없어요. 이번에 표절 시비가 붙은 신경숙 씨는 문단에 시장경제 개념을 도입한 작가로 볼 수 있어요. 문학동네가 신씨에게 거액의 선금을 주고 스카우트했을 때 문학과지성사에서 키운 작가가 돈에 팔려 가느니 하며 비판이 일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학비평가들도 이젠 경제원론쯤은 읽고 비평을 해야 합니다.”
건강에 대해 묻자 그는 “건강이 나빠지고 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작가에겐 글을 못 쓰는 게 죽음”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시집 두 권을 더 낼 생각입니다. 이미 다 써서 (출판사에) 맡겨 놨어요. 한 권은 생전에, 한 권은 사후에 출간할 계획입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신다면 이번 작품에 담지 못해 아쉬웠던 임진왜란을 그린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