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여성 첫 노벨상 수상자 마리 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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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방사능의 어머니’…. 세계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리 퀴리에겐 항상 여러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는 186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다. 1891년 러시아 식민지였던 조국을 떠나 프랑스 소르본대에 입학했다.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1895년 결혼한 피에르 퀴리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연구 파트너였다.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던 두 사람은 1898년 7월 폴로늄, 그해 12월에 라듐을 연이어 발견했다. 이 공로로 1903년 마리 퀴리는 남편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06년 남편이 사망한 뒤 그는 두 딸을 키우며 연구를 계속했다. 1911년 라듐 관련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마리 퀴리는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방사능으로 인한 백혈병이었다. 1995년 4월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만 묻힐 수 있는 국립묘지 팡테옹에 이장됐다. 팡테옹에 안장된 여성은 마리 퀴리가 처음이다.
■ 마리 퀴리
1867년 11월7일 출생
190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1934년 7월4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흔히 ‘퀴리 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는 186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마리아 스크워도프스카다. 1891년 러시아 식민지였던 조국을 떠나 프랑스 소르본대에 입학했다.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1895년 결혼한 피에르 퀴리는 좋은 남편이자 훌륭한 연구 파트너였다.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던 두 사람은 1898년 7월 폴로늄, 그해 12월에 라듐을 연이어 발견했다. 이 공로로 1903년 마리 퀴리는 남편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06년 남편이 사망한 뒤 그는 두 딸을 키우며 연구를 계속했다. 1911년 라듐 관련 연구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마리 퀴리는 1934년 프랑스 파리에서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원인은 방사능으로 인한 백혈병이었다. 1995년 4월 그의 유해는 프랑스의 국가적 위인들만 묻힐 수 있는 국립묘지 팡테옹에 이장됐다. 팡테옹에 안장된 여성은 마리 퀴리가 처음이다.
■ 마리 퀴리
1867년 11월7일 출생
190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1934년 7월4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