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후 외환은행 본점, 직원들이 100여 장의 대자보를 읽고 있다. 건너편 유리벽에도 100장 이상의 대자보가 붙었다)





외환은행 본점에 노동조합을 성토하는 임직원의 대자보 2백여 장이 붙었다. 노조가 주장하는 경영진의 한 낱 꼼수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손때 묻은 한 글자, 한 글자의 깊이를 재다보면 그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하나·외환 통합이슈를 취재하면서 느낀 점은 이곳 직원들도 그저 노동자의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평균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지만 이들도 애환이 있다.





잘나가던 국책은행이 민영화된 이후 IMF 외환위기로 부침을 겪으면서 주인이 3번 바꼈다. 1999년 독일 코메르츠방크로 팔렸다가, 2003년에는 론스타에 매각됐다. 결국 하나금융지주가 2012년 새 안주인으로 들어앉았다.





하나은행과의 조기통합이 공론화된 이후에도 회사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인수되는 처지의 비참함에 자격지심도 더해졌겠지만,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 싸움 구경이 그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들었다.





대자보는 바닥이 드러난 직원들의 인내심을 대변한다. 그들은 이미 통합 여부보다 어떤 결합을 만들지에 사유의 초점을 옮겼다.





"사인 할 때까지 통합은 없다"는 한 노조 간부의 피로도 극에 달했겠지만, 직원들도 이제 기다림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재간이 없는 듯하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는 한 직원의 글귀가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의 외침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이날 경영진은 임직원 280여명과 간담회를 가졌다. 노조 집행부 몇몇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자리를 지키며 출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직원들이 한두 명씩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집행부는 확성기를 켜고 "동지여러분! 5분만 시간을 내주십시오."라며 대화를 청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노조가 더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이지수기자 jslee@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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