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사실상 결정짓는 국민투표가 5일 오후 7시(한국시간 6일 새벽 1시)에 끝났지만 위기와 혼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채권단과 구제금융 협상을 재개할 대표단을 구성하는 문제부터 난항이 예상되는 데다 재협상에 들어간다 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운명 갈린 날…투표 끝났지만 구제금융 재협상 '산 넘어 산'
이날 국민투표 종료 직후 그리스 현지언론이 발표한 출구조사에선 국제 채권단의 채무협상안에 반대하는 표가 찬성보다 3~5%포인트 앞섰다.

○“치프라스 퇴진이 위기 극복 방안”

그리스는 지난달 30일 IMF에 15억유로(약 1조9000억원)를 연체해 사실상 디폴트에 빠졌다. 국제 금융계는 그리스가 오는 20일 돌아오는 ECB 채무 35억유로마저 갚지 못하면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리스는 당장 새로운 협상단을 구성해 20일까지는 채권단과 합의를 끝내고 추가 구제금융을 받아야 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국민투표 결과 채권단의 의견을 수용하자는 찬성 의견이 더 많이 나와 반대표를 행사해달라고 요구했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퇴진하고 새로운 협상단이 채권단과 개혁안 접점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르게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찬성 의견이 많아도 신민당과 사회당 등 야당의 세력이 워낙 약세여서 현 집권당인 시리자(급진좌파연합)를 대신해 새로운 협상단을 구성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이 나온다. 만약 치프라스 총리가 물러나지 않거나 반대 의견이 많이 나오면 채권단과의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채권단이 시리자와는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기존 협상단과는 생산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져서다.

○미국의 그렉시트 반대도 큰 변수

채권단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그리스 위기 해소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IMF는 그리스 부채를 30% 삭감해주고 만기를 20년 늘려줘야 그리스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빚탕감을 해줄 때 해주더라도 일단 그리스의 ‘백기투항’만이 해법이라는 자세를 고수하면서 그리스 협상단의 입지를 크게 좁혔다.

국민투표로 갈라진 여론도 위기와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국민투표에 앞서 이뤄진 여론조사 결과 찬성과 반대는 각각 40%대로 오차범위 안에서 동률을 이룰 만큼 팽팽하게 맞섰다. 투표 전날에는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두 집단 사이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을 정도로 국론이 갈라져 있다.

다만 그리스와 채권단 모두 겉으로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렉시트는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흘리고 있어 위기 진화에 대한 기대도 여전하다. 외신은 “미국은 그리스가 EU에서 빠져나가면 러시아의 팽창정책에 대항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그렉시트를 반대하고 있다”며 “미국이 움직이면 위기가 좀 더 쉽게 가라앉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EU도 극단적인 상황은 피하겠다는 생각이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5일 독일 주간 벨트 암 존탁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유럽은 그리스 국민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부도 상태에 처한 그리스 국민이 생존을 위한 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EU가 긴급 자금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슐츠 의장은 “긴급자금 지원은 단기간에 한정되는 것일 뿐 지속될 수 있는 해결책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