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언어극 ‘난타’ 출신 배우 류승룡(45·사진)은 배우로는 늦은 편인 마흔 줄에 전성기를 맞았다. 2011년 청나라 장군 쥬신타 역으로 나선 영화 ‘최종병기 활’(747만명)이 흥행에 성공한 뒤 주연 혹은 조연으로 출연한 ‘광해’ ‘7번방의 선물’ ‘명량’ 등 3편의 영화가 모두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광해’에서는 광해의 최측근 신하, ‘7번방’에서는 살인 누명을 쓴 바보 아버지, ‘명량’에서는 왜장 구루시마 역을 맡았다.

오는 9일 개봉하는 판타지 호러 ‘손님’에서 그는 동네 쥐를 끌고 다니는 피리 부는 광대 우룡 역으로 돌아온다. 독일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모티프로 한 이 영화는 1950년대 어느 산골마을에서 나그네 우룡이 아들과 함께 잠시 머무르는 동안 촌장(이성민 분)이 마을의 쥐떼를 퇴치하면 목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쥐가 사라지고 나서 돌변한다. 6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처음에는 어디서 본 듯했어요. 그러나 3분의 1을 지나니까 새롭고 독특한 작품이란 걸 알겠더군요.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국 산골로 가져오니까 이질감이 있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약속의 소중함이죠.”

영화는 타인과의 약속을 가볍게 여겨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부메랑을 맞는지 끔찍한 방법으로 풀어놓는다. 류승룡은 “인생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짧은 시간 내에 극대화해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실제 내 인생과 닮은 광대 역을 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극 중 광대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감정의 노동을 겪는다.

“완성작을 보니까 언제나처럼 제 연기가 아쉬웠어요. 하지만 의도한 대로 영화가 나온 것에는 만족합니다. 이 배역을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때만큼 집중력이 안 생길 것 같아서요. 강원 평창, 양양, 정선 등에서 촬영하는 동안 온갖 벌레들과 짓궂은 날씨 등 악조건을 이겨냈으니까요.”

1000만명을 모은 영화에 3편이나 출연한 비결을 물었다. “흥행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해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았어요. 이야기와 배역이 재미있어서 출연했는데 결과가 좋았던 거죠. 배우가 된 것도 이렇게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기하는 게 재미있어서였어요.”

그는 평범한 용모를 지닌 자신이 광고에 출연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통신회사 한 곳과 배달업체 등 단 두 편의 광고에 출연했는데 워낙 많이 방송되니까 어떤 분들은 저를 ‘물질만능주의자’라고 오해합니다. 또 다른 분은 제가 사진 촬영에 응해주지 않았다고 댓글을 올렸고요. 정말 억울합니다.”

류승룡이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다작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 1년에 1~2편에만 출연하는데 흥행이 잘되니까 극장에 오래 걸려 있었을 뿐”이라며 “올해에도 두 편만 개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최고 몸값을 받는 스타 반열에 들었지만 ‘명량’에선 조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국내 배우들은 장르와 비중에 집착하는 경향이 유독 심합니다. 구루지마 역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저는 이순신 역 최민식 선배와 대결해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된다는 게 영광이었어요. 일본군 장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5년간(1998~2002년) ‘난타’ 무대에 섰다. 비언어극에서 추임새만 하다 보니 대사 연기가 하고 싶어져 그만뒀다고 한다. 이후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3년간 막노동을 하면서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2005년)의 조연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난타 시절 5년간 각국을 돌며 같은 공연을 하다 보니 새 환경에 빨리 적응하면서 상대역과 타이밍을 맞추는 훈련을 했어요. 그게 요즘 영화 연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