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이끈 시민군 총사령관 라파예트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후, 시민들에게 삼색 모자를 나눠줬다. 모자의 청색과 백색, 적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한다. 현재의 프랑스 국기인 삼색기가 여기서 유래했다.

프랑스 혁명은 단위의 개혁도 이끌었다. 당시 프랑스에는 지역별, 업종별로 너무 많은 단위가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었다. 이 시대에 쓰인 단위가 약 25만개에 달했다. 단위의 혼용은 권력층인 영주들이 세금을 자의적으로 거둬들이는 수단이 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평민 몫이었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단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길이의 단위를 지구 둘레를 바탕으로 정의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척도 기준을 세상의 크기로부터 구하겠다”는 발상은 당시 자유와 평등으로 대변되는 혁명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지구 둘레를 잰다는 난제를 풀기 위해 과학자들이 나섰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의 천문학자 들랑브르와 메생이 파리를 지나는 지구 자오선 측정 원정대를 구성했다. 들랑브르는 프랑스 북부, 메생은 프랑스 남부에서 스페인까지의 거리를 직접 지나가며 측량했다.

대혁명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의 혼란으로 그들이 겪은 고초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스파이로 몰려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목숨을 위협받기도 했지만, 그들은 시민으로서, 과학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6년 넘게 꿋꿋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오랜 여정 끝에 두 과학자가 측정한 자료를 바탕으로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1000만분의 1로 줄인 1m 원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미터의 정의는 추후 질량 등 다양한 단위의 기초가 됐다.

‘만물의 척도’로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이 사용하는 미터법 혁명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과학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꿈을 가진 과학자들은 지루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얻은 작은 실험 결과 하나에도 즐거움을 느끼고, 사회의 고정관념에 맞서는 큰 용기를 발휘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굳은 사명감으로 묵묵히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모든 과학자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신용현 <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yhshin@kriss.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