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돌파] 인맥보다 기술력…텃세 딛고 러시아 산업폐기물 시장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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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서 꽃피우는 기업가 정신 (15·끝)
러시아 폐기물 처리 업체 로뎀 박원규 사장
시장 점유율 20%…현지 업체 반값 수수료 공세에
철저히 규정 지키며 신뢰 쌓아…폭스바겐 공식 업체로 뽑혀
대기업 포기하고 창업…주말 근무 도입한 '독종'
'급할땐 로뎀 찾아라' 평판 얻어…"친환경 신업단지 조성이 목표"
러시아 폐기물 처리 업체 로뎀 박원규 사장
시장 점유율 20%…현지 업체 반값 수수료 공세에
철저히 규정 지키며 신뢰 쌓아…폭스바겐 공식 업체로 뽑혀
대기업 포기하고 창업…주말 근무 도입한 '독종'
'급할땐 로뎀 찾아라' 평판 얻어…"친환경 신업단지 조성이 목표"
스물다섯 살이던 1993년 박원규 로뎀 사장(47)은 짐을 챙겼다. 러시아로 떠나기 위해서였다. 손에 쥔 건 막일로 모은 100만원이 전부였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 내세울 만한 학력도, 재산도, 기술도 없는 그에게 한국은 여기저기 장벽투성이였다.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지만 한반도의 78배(1708만㎢·세계 1위)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 끌렸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지 22년. 박 사장은 연매출 400만달러(약 45억원)의 러시아 최대 산업폐기물 처리 업체를 이끌고 있다.
산업폐기물 처리 시장 개척
박 사장이 2006년 러시아에 설립한 로뎀은 산업폐기물 처리 전문업체다. 유리, 비닐, 고장난 부품, 박스 등을 종류에 따라 분리해 압축 또는 파쇄한다. 재활용 가치가 없는 건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 스티로폼과 철제는 녹이거나 재가공해 원재료를 다루는 공장에 되판다.
거래기업에서 폐기물 처리 수수료를 받기도 하고, 재활용 가치가 있는 폐기물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스티로폼은 재가공해 1㎏에 1달러를 받고 판다. 로뎀이 장기 계약을 맺은 러시아 기업은 수십 곳이다
러시아 폐기물 처리 시장 규모는 연간 총 16억달러 정도다. 이 중 로뎀은 음식 쓰레기 등 가정 폐기물을 뺀 산업폐기물 처리 시장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라 자격증과 관련 장비 없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영세 업체가 많다. 로뎀은 투명하고 전문적인 폐기물 처리를 내세웠다. 박 사장을 포함해 전체 임직원의 60%가 폐기물 처리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다.
박 사장의 어린 시절은 고단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일용직으로 일했다. 신문·우유·야식(夜食) 배달부터 공사 현장 보조, 화장실 청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지만 하루하루 버티듯 사는 삶이 버거웠다.
박 사장은 해외에 나가기로 했다. 한국인이 많이 나가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를 택했다. 1억4200만여명(세계 9위)의 인구를 봤을 때 잠재력이 있어 보였다.
러시아로 가서는 하루 3시간씩 자며 일하고 공부했다. 생활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 준비도 같이 했다. 그렇게 2년. 러시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교(민족우호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엔 러시아에서 현지 채용을 한 LG전자에 합격했다. 쓰레기 더미 보며 창업 결심
LG전자에 입사한 뒤 5년이 흘렀다. 직장인이 되려고 한국을 떠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퇴근하던 길에 우연치 않게 철제와 종이 등이 뒤엉켜 있는 폐기물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그런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러시아에는 분리수거와 재활용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기업들은 산업폐기물을 자체적으로 매립하거나 일반쓰레기와 섞어 버린다. 아니면 폐기물 처리 영세 업체에 약간의 수수료를 주고 일을 맡긴다.
관련 규제는 강해지는 추세다. 201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산업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졌다. 러시아 주요 도시에만 4000만t의 폐기물이 쌓여 있다는 통계가 있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성장 가능성은 높았지만 개척이 쉽지 않았다. 로뎀을 설립하고 홍보 책자를 제작해 무작정 기업을 찾아다녔다. 현지 업체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현지 업체들은 영세하다 보니 업무 시스템이 뒤죽박죽이었다. 위험 폐기물조차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폐기물 무게를 잴 때 거래 기업을 속이는 일도 잦았다.
로뎀은 수익이 줄더라도 폐기물 처리 원칙을 지켰다. 폐기물을 절차에 맞춰 체계적으로 처리했다. 러시아 정부는 위험 폐기물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러시아 정부의 검사에서 걸리면 폐기물 처리 업체가 잘못했더라도 폐기물 생산 업체가 영업정지를 받는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영세 업체와 거래했다가 정부 검사에 걸려 영업정지를 받는 기업이 하나둘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사장에게 일을 맡기면 절대 탈 날 일이 없다’는 얘기가 돌았다. 로뎀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돈·인맥 없이 ‘발품’ 팔아 영업
로뎀의 일감이 늘어나자 현지 경쟁업체의 방해도 거세졌다. 공무원과 결탁해 수시로 괴롭혔다. 박 사장은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경찰에 불려다녔다. 경쟁업체들은 흑색선전과 반값 수수료를 내세워 로뎀의 거래 기업을 가로채 갔다.
로뎀은 그럴수록 기술력으로 승부했다. ‘인맥 영업’보다 입찰을 통한 계약 수주에 더 집중했다. 외국인이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좀 더 공정하게 전문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박 사장은 “지난해 공개 입찰을 통해 폭스바겐의 폐기물 처리 업체로 선정됐을 때 가장 기뻤다”며 “유난히 선정 절차가 깐깐했고, 러시아 업체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기업이라 감회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주말 근무도 로뎀만의 강점이다. 러시아에서는 주말 근무가 거의 없다. 철저하게 주 5일 근무다. 수당을 더 주더라도 직원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면서 “업체 경쟁력이 높아지면 직원에게도 이득”이라고 설득했다. 로뎀은 전체 직원의 90%가 러시아인이다. 처음에는 주말 근무에 반발하던 직원들이 박 사장의 솔선수범에 변하기 시작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급할 땐 로뎀을 부르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박 사장의 장기 계획은 러시아에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산업폐기물 처리 공장뿐 아니라 폐기물 재활용 공장까지 산업단지에 같이 세우는 게 꿈이다.
모스크바=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몰랐지만 한반도의 78배(1708만㎢·세계 1위)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에 끌렸다.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첫발을 내디딘 지 22년. 박 사장은 연매출 400만달러(약 45억원)의 러시아 최대 산업폐기물 처리 업체를 이끌고 있다.
산업폐기물 처리 시장 개척
박 사장이 2006년 러시아에 설립한 로뎀은 산업폐기물 처리 전문업체다. 유리, 비닐, 고장난 부품, 박스 등을 종류에 따라 분리해 압축 또는 파쇄한다. 재활용 가치가 없는 건 규정에 따라 처리한다. 스티로폼과 철제는 녹이거나 재가공해 원재료를 다루는 공장에 되판다.
거래기업에서 폐기물 처리 수수료를 받기도 하고, 재활용 가치가 있는 폐기물은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스티로폼은 재가공해 1㎏에 1달러를 받고 판다. 로뎀이 장기 계약을 맺은 러시아 기업은 수십 곳이다
러시아 폐기물 처리 시장 규모는 연간 총 16억달러 정도다. 이 중 로뎀은 음식 쓰레기 등 가정 폐기물을 뺀 산업폐기물 처리 시장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시장이 초기 단계라 자격증과 관련 장비 없이 음지에서 활동하는 영세 업체가 많다. 로뎀은 투명하고 전문적인 폐기물 처리를 내세웠다. 박 사장을 포함해 전체 임직원의 60%가 폐기물 처리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다.
박 사장의 어린 시절은 고단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 후 일용직으로 일했다. 신문·우유·야식(夜食) 배달부터 공사 현장 보조, 화장실 청소까지 안 해본 게 없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지만 하루하루 버티듯 사는 삶이 버거웠다.
박 사장은 해외에 나가기로 했다. 한국인이 많이 나가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를 택했다. 1억4200만여명(세계 9위)의 인구를 봤을 때 잠재력이 있어 보였다.
러시아로 가서는 하루 3시간씩 자며 일하고 공부했다. 생활비를 위해 이런저런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학교 입학 준비도 같이 했다. 그렇게 2년. 러시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학교(민족우호대)에 들어갔다. 졸업 후엔 러시아에서 현지 채용을 한 LG전자에 합격했다. 쓰레기 더미 보며 창업 결심
LG전자에 입사한 뒤 5년이 흘렀다. 직장인이 되려고 한국을 떠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퇴근하던 길에 우연치 않게 철제와 종이 등이 뒤엉켜 있는 폐기물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그런 폐기물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거다’ 싶었다.
러시아에는 분리수거와 재활용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 기업들은 산업폐기물을 자체적으로 매립하거나 일반쓰레기와 섞어 버린다. 아니면 폐기물 처리 영세 업체에 약간의 수수료를 주고 일을 맡긴다.
관련 규제는 강해지는 추세다. 201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산업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커졌다. 러시아 주요 도시에만 4000만t의 폐기물이 쌓여 있다는 통계가 있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 성장 가능성은 높았지만 개척이 쉽지 않았다. 로뎀을 설립하고 홍보 책자를 제작해 무작정 기업을 찾아다녔다. 현지 업체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현지 업체들은 영세하다 보니 업무 시스템이 뒤죽박죽이었다. 위험 폐기물조차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폐기물 무게를 잴 때 거래 기업을 속이는 일도 잦았다.
로뎀은 수익이 줄더라도 폐기물 처리 원칙을 지켰다. 폐기물을 절차에 맞춰 체계적으로 처리했다. 러시아 정부는 위험 폐기물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러시아 정부의 검사에서 걸리면 폐기물 처리 업체가 잘못했더라도 폐기물 생산 업체가 영업정지를 받는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영세 업체와 거래했다가 정부 검사에 걸려 영업정지를 받는 기업이 하나둘 생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인 사장에게 일을 맡기면 절대 탈 날 일이 없다’는 얘기가 돌았다. 로뎀의 인지도가 높아졌다.
돈·인맥 없이 ‘발품’ 팔아 영업
로뎀의 일감이 늘어나자 현지 경쟁업체의 방해도 거세졌다. 공무원과 결탁해 수시로 괴롭혔다. 박 사장은 악의적인 소문 때문에 경찰에 불려다녔다. 경쟁업체들은 흑색선전과 반값 수수료를 내세워 로뎀의 거래 기업을 가로채 갔다.
로뎀은 그럴수록 기술력으로 승부했다. ‘인맥 영업’보다 입찰을 통한 계약 수주에 더 집중했다. 외국인이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좀 더 공정하게 전문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박 사장은 “지난해 공개 입찰을 통해 폭스바겐의 폐기물 처리 업체로 선정됐을 때 가장 기뻤다”며 “유난히 선정 절차가 깐깐했고, 러시아 업체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기업이라 감회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주말 근무도 로뎀만의 강점이다. 러시아에서는 주말 근무가 거의 없다. 철저하게 주 5일 근무다. 수당을 더 주더라도 직원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박 사장은 직원들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주말에도 일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면서 “업체 경쟁력이 높아지면 직원에게도 이득”이라고 설득했다. 로뎀은 전체 직원의 90%가 러시아인이다. 처음에는 주말 근무에 반발하던 직원들이 박 사장의 솔선수범에 변하기 시작했다. 기업들 사이에선 ‘급할 땐 로뎀을 부르면 된다’는 인식이 생겼다.
박 사장의 장기 계획은 러시아에 친환경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산업폐기물 처리 공장뿐 아니라 폐기물 재활용 공장까지 산업단지에 같이 세우는 게 꿈이다.
모스크바=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