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반 삼성그룹 주가에 미칠 영향 감안해 결정"
국민연금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양사는 물론 삼성그룹 전체 계열사 주가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따져보고 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반결정이 20조원이 넘는 삼성 계열사 전체 보유주식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반 삼성그룹 주가에 미칠 영향 감안해 결정"
○삼성전자 주가 분석에 ‘주목’

8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국내외 증권사 등을 통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무산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기업 가치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접촉한 한 글로벌 증권사 대표는 “엘리엇매니지먼트를 포함한 해외 헤지펀드들이 삼성 계열사 지분을 잇따라 매집한 것이 그룹 경영과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보려는 의도”라고 전했다. 국민연금에 정통한 정부 관계자도 “국민연금 자산의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이 합병 찬반을 결정하는 데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한 뒤 삼성물산 대주주인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도 약 1%씩 사들였다. 합병 성사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삼성그룹 경영에 관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엘리엇과 비슷한 성향의 메이슨캐피털은 삼성물산 지분 2.2%를, 영국계 헤지펀드 헤르메스는 삼성정밀화학 지분 5.02%를 매입했다. IB업계는 해외 헤지펀드들이 삼성전자 지분도 매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삼성전자의 미래 가치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엘리엇이 다른 기업들에 요구했던 배당 확대, 사업부 분할 및 매각 등 단기 주가부양책이 그동안 삼성의 고성장 기반이었던 중장기 투자전략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경착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심하는 기금운용본부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8%) 시가는 14조6000억원으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전체 삼성그룹 계열사 지분가치의 71.6%에 달한다. 제일모직(4.84%)과 삼성물산(11.6%)은 각각 5.5% 안팎이다.

국민연금은 합병이 통과될 경우와 무산될 경우 양사 주가 전망도 외부 리서치회사를 통해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뢰를 받은 대부분 국내외 기관들은 합병안이 통과되면 두 회사 주가 흐름이 모두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했다. 합병이 무산될 경우 단기주가 전망은 하락에 무게중심이 실린 가운데 중장기 전망은 증권사별로 다소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는 “국민연금은 헤지펀드와 달리 긴 안목을 갖고 중장기 기업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며 “특히 개별 사안에 대한 미시적 판단보다 국민연금의 전체 포트폴리오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9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양사 합병에 대한 ‘찬반’ 의견을 결정할 예정이다.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투자위원회가 자체 결정하는 방안도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가 ‘재벌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합병에 반대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을 압박하고 있어 민간 자문기구인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최종 결정을 미룰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좌동욱/서기열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