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 마음골프학교 교장은 “퍼팅라인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헌 마음골프학교 교장은 “퍼팅라인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1일 오전 경기 시흥시 솔트베이GC. 약속시간보다 40분 먼저 와 그린을 읽던 그가 악수를 청했다. “나 김헌이오.”

김헌(55). 베스트셀러 ‘골프천재가 된 홍대리’의 저자이자 마음골프학교 설립자인 ‘독학골프계’의 전설적 고수다. 그는 혼자 골프를 익혀 스크래치골퍼(핸디캡 0)의 경지에 올라섰다.

클럽조차 잡아보지 못한 채 첫 라운드를 나가야 했던 2009년 7월이었다. 급히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한 동영상이 당시 초보골퍼들에게 ‘명작’으로 불렸던 ‘일주일 만에 머리올리기’였다.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1주일이 지난 뒤 처음 나간 필드에서 124타를 쳤다. ‘미친 스코어’라는 동반자들의 호들갑이 뒤따랐다. 그때의 우쭐함이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음을 깨달아갈 즈음 ‘옛 스승’을 실전에서 맞닥뜨린 것이다. 반가움과 두려움,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는 구세주일까, 냉혹한 승부사일까.

첫 번째 홀. 천천히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티샷한 볼이 왼쪽으로 휘었다. 연습장에선 잘 맞던 공이 필드만 나오면 ‘와이파이’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훅 병’이다. “제가 구장을 좀 넓게 쓰는 편이죠, 허허!” 겉은 웃었지만 속은 타들어갔다.

그는 말없이 티샷을 했다. 낮게 출발한 공은 2단 분리 로켓처럼 한 번 더 상승하더니 페어웨이를 반으로 갈랐다. 비거리(230m)는 비슷했지만 스윙의 질이 달랐다. 자연스러운 피니시가 시선을 확 끌었다. 그 연배의 골퍼들에게선 보기 드문 유연함이었다. 비결이 뭘까. 벙커를 전전하던 기자가 3번홀과 5번홀에서 더블 보기를 적어내고 나서야 그가 입을 뗐다.
"공보다 홀컵 보는 데 집중해야 퍼팅 잘하죠"
“힘부터 빼야 해요. 헤드는 들었다가 놓기만 해도 디벗이 생기는데 불안감 때문에 아이언에도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고는 그립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립부터 다시 잡아야겠네.”

꽉 잡는 것과 견고하게 잡는 건 천양지차라는 얘기였다. 그는 “노 에어(no air)를 생각하라”며 “공기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손과 손의 마찰력을 이용하면 견고하게 그립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힘은 얼마나 빼야 하는 걸까. 그는 악수를 청하더니 맞잡은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손목 힘이 슬슬 빠지기 시작했다. “힘이 다 빠진 상태, 이걸 기억해두라”고 그는 설명했다. 특히 엄지와 검지를 서로 V자 형태로 밀착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로들이 엄지와 검지가 갈라지는 부분을 꿰맨 장갑을 끼고 연습하는 것도 ‘살살 견고하게’ 잡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기초공사가 잘못됐으니 스윙도 문제다. 타깃 방향을 12시라고 가정할 때 7시(인)에서 들어온 헤드가 1시(아웃) 방향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악성 훅이 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궤도를 인(7시)-아웃(1시)-인(11시)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

그는 기자를 티잉 그라운드 근처 광고판(A보드) 앞에 세우더니 “광고판을 때리지 않되 헤드가 살짝 스치도록 스윙을 해보라”고 주문했다. 처음엔 광고판을 때리던 헤드가 10여차례 스윙을 거치는 동안 조금씩 인-아웃-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궤도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게 빈 스윙이다. 그는 세 번 빈 스윙을 한 뒤 한 번 공을 때리는 이른바 ‘3빈 1타’를 추천했다. 빈 스윙 비중을 늘리면 늘릴수록 궤도 역시 쉽게 완성된다는 얘기다.

전반전이 5오버파로 끝나자 ‘지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두 가지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먼저 퍼팅이다.

“공은 절망이고 홀컵은 희망입니다. 홀컵을 보는 데 퍼팅시간의 90%를 할애해야 합니다.”

눈으로 얻은 직관적 정보에 따라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데도 아마추어들은 곧잘 이 본능을 잊어버린단다. 홀컵을 많이 보면 거리감이 배는 좋아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 손으로 홀컵을 보고 퍼트하는 연습이 효과적이라고 권했다.

덕분일까. 후반 파 행진이 시작됐다. ‘아우디’와 ‘올림픽’을 넘어 ‘손님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는 6개홀 연속 파다. 18홀을 끝내고 받아든 성적표는 7오버파 79타. 지난번(87타)보다 나빠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는 73타로 경기를 마쳤다.

더 중요하다던 두 번째 문제가 궁금했다. “세 가지를 포기하면 골프가 행복해질 겁니다. 똑바로 치겠다는 욕심, 멀리 보내겠다는 욕심, 굿샷이라는 주변의 환호에 대한 욕심입니다.”

스승은 구세주였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장소협찬 = 솔트베이골프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