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뒷줄 왼쪽)이 1994년 외할아버지 손기정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

손기정기념재단 제공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뒷줄 왼쪽)이 1994년 외할아버지 손기정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 손기정기념재단 제공
“할아버지께선 세계 마라톤 역사에 남을 위대한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당신의 역량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죠. 저의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 참가가 ‘인간 손기정’이 재평가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고(故) 손기정 선수의 외손자 이준승 손기정기념재단 사무총장(48)은 10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 사무총장은 외교부 주최로 진행되는 ‘유라시아 친선특급 2015’에 초청돼 오는 14일부터 19박20일 동안 유라시아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와 중국, 폴란드, 독일 등 1만4400㎞의 여정에 나선다.

특히 독일 베를린까지 향하는 1만1000㎞는 손 선수가 79년 전 남승룡 선수와 함께 올림픽 참가를 위해 몸을 실었던 베를린행 열차가 달렸던 길이다. 이 사무총장은 “외교부로부터 지난 4월 초청받은 뒤 세부 일정은 지난달 확정 통보받았다”며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되짚는 길이기에 정말 뜻깊게 다가온다”고 전했다.

이 사무총장은 “할아버지는 영웅적 마라토너로서의 면모보다는 늘 주변 상황에 의해 희생된 슬픈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됐다”며 “일제강점기와 남북 분단의 비극을 모두 겪은 할아버지의 일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손 선수는 일본인 선수들을 실력으로 이기고 올림픽 대표로 선발돼 베를린올림픽에 출전했다. 히틀러가 이끌던 독일 나치 정권은 베를린올림픽을 통해 “아리아인이 우월하다”고 선전하려 했지만, 손 선수는 동양인으로 ‘올림픽의 꽃’ 마라톤 우승자가 돼 히틀러와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기간 내내 “나는 한국인”이라 했던 손 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단 채 시상대에 올라야 했다. 광복과 분단 후엔 신의주 출신이면서도 남쪽을 택했다는 이유로 북에선 잊힌 영웅이 됐다.

이 사무총장은 유라시아 친선특급의 후반 기착지인 베를린에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베를린주경기장에 있는 ‘Son. Japan(손, 일본)’이라 적혀 있는 손 선수 명패에 한국 국적을 병기해 달라고 독일올림픽위원회에 요청할 계획이다. 그는 “당시엔 한국이란 나라가 없었기에 일본이라 표기된 걸 없애달라 하는 건 또 하나의 역사왜곡이 되는 것이기에 한국 국적을 같이 표시해 달라는 부탁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손 선수도 생전에 이 일이 성사되길 원했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