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한국견문록' 펴낸 이석연 전 법제처장 " 인간사 꿰뚫은 사마천의 통찰력 빌렸죠"
“책과 더불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61·사진)의 신조다. 법조계에서 유명한 헌법연구자이자 ‘헌법 등대지기’ ‘침묵하는 보수로는 나라 못 지킨다’ ‘책, 인생을 사로잡다’ 등 다수의 저서를 낸 작가인 이 전 처장이 이번엔 중국 전한시대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매개로 한국의 시사 문제를 탐구하는 신간 ‘사마천 한국견문록’을 펴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 단국대 교수가 추천사에서 “‘사기’ 연구에 있어서 전문 학자 못지않게 조예가 깊은 분이라 단언한다”고 할 정도로 사학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서초동 로이어즈타워에 있는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이 전 처장을 만났다. 법제처와 헌법재판소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직자이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이끈 1세대 시민운동가,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 제기 주도를 비롯한 헌법 관련 소송전문 변호사 등 화려한 경력에서 떠오르는 딱딱하고 이지적인 이미지와 달리 매우 소탈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마천의 시각으로 오늘의 한국을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으며 본격적 집필 작업은 지난해 초부터 했다”며 “돌고 도는 인간사를 꿰뚫은 사마천의 예리한 통찰력을 빌렸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사마천은 궁형으로 남성을 잃는 치욕을 감내하고 후대에 길이 남을 대작을 만들어냈다”며 “지금도 매일 ‘사기’를 부분 부분 정독하며 ‘바른말을 하며 살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사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를 꼽았다.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꽃과 열매를 보러 사람들이 모여 나무 아래 저절로 길이 난다”는 뜻이다. 그는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뛰어난 인물을 의미하는데 나는 이를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사회 원로로 해석한다”며 “현재 국내엔 ‘도리(桃李)’의 역할을 해줄 든든한 원로가 없어 너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 전 처장이 ‘사기’를 처음 알게 된 건 스무 살 때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6개월 만에 대학 입학 검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대학 진학을 미루고 돌연 전북 김제 금산사로 들어가 1년10개월 동안 나오지 않았다. “집에선 당연히 난리가 났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을 때도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는데 그때 책을 400권 넘게 읽었습니다. ‘사기’도 그때 읽었어요. 남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 일이었지만 그 당시 키운 독서의 힘이 아니었으면 오늘의 저는 없습니다.”

‘독서 예찬’은 계속됐다. 이 전 처장은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진정 바쁜 사람이야말로 책을 읽는다”고 역설했다. 그는 “책을 통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끊임없이 얻을 수 있는데 그 기회를 놓아버린다는 것은 자기 발전을 포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사기’와 관련해 이 전 처장의 다음 목표는 사마천이 범려와 백규, 자공 등 춘추전국시대 부자들에 대해 기록한 ‘화식열전(貨殖列傳)’을 국내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책을 쓰는 것이다. 그는 “사마천은 2200여년 전부터 이미 자유시장경제 원리와 중요성을 설파했다”며 “애덤 스미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훨씬 앞질렀던 그의 경제 사상을 연구해 공유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