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마술피리', 몽환적 무대 연출에 가창·연주 '황금 조화'
“딸이 떠난 뒤 내 모든 행복은 사라졌어요.”

밤의 여왕이 딸 파미나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아리아 ‘두려워 마오 젊은이’가 울려퍼지자 무대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환상적 공간으로 변한다. 은하로 가득한 우주 공간은 프로젝션 매핑(대상물 위로 영상을 투사하는 것) 기법으로 무대에 그려져 지속적으로 팽창한다. 우주 한가운데 외로이 서서 딸을 찾는 여왕의 애절한 목소리가 한결 호소력 짙게 들린다.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개막하는 오페라 ‘마술피리’는 은밀하면서도 몽환적인 작품의 분위기를 영리하게 구현해낸다. 모차르트가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있는 독일 음악극인 징슈필로 작곡한 이 작품은 동화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비밀스러운 사상이 함축돼 있다. 모차르트와 대본을 쓴 쉬카네더는 당시 자신들이 가입했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이념을 극과 음악에 촘촘히 녹여냈다.

공연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대로 작품에 담긴 신비로움을 극대화한다.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삼각형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무늬가 대표적이다. 연출가 이경재는 의도적으로 삼각형을 무대 전면에 내세웠다. 세 천사, 세 시녀, 침묵·물·불의 세 가지 시련 등 ‘3’이 극을 주도하는 숫자라는 데 착안한 것. 승려들이 정사면체 모양의 LED(발광다이오드) 램프를 안고 합창하는 장면에서 삼각형이 주는 기괴한 이미지가 강조된다.

연출의 백미는 선명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로 꾸민 빛의 활용이다. 마술피리가 처음 등장할 때는 노랑과 파랑, 초록과 분홍의 조명으로 포인트를 준다.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원색의 사각형 영상이 무대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 동화 줄거리에 추상성을 덧입힌다.

주역들의 안정감 있는 가창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지휘자 임헌정은 개막 이틀 전인 지난 13일 열린 프레스리허설에서까지 무대 완성도를 위해 연기를 직접 지도하는 등 완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새잡이 ‘파파게노’로 분한 공병우는 재치있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잘 소화하며 웃음을 준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 주요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 중인 테너 김우경(타미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서활란(밤의 여왕)의 가창도 돋보인다.

한국어 대사가 외화 더빙처럼 어색해 극의 흐름을 끊는 것이 흠이다. 가족오페라를 내세운 기획을 살려 아리아는 독일어, 대사는 한국어로 이원화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아리아를 부르는 목소리와 대사 발성이 달라 같은 인물이라 생각할 수 없는 배역도 있다. 19일까지, 1만~15만원.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