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사(理事)들을 다 거셨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회사를 상대로만 소송하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서울고등법원 민사40부의 이태종 민사수석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열린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 결의금지 등 가처분의 항고심 심문기일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측에 이 같은 의견을 밝혔다. 이 수석부장판사는 “이 사건이 결국은 주총에서 결의를 금지시키자는 것인데 회사를 상대로만 소송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핵심에만 집중하면 훨씬 심리가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이 불필요하게 회사 이사들을 끌고 들어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엘리엇 측은 지난달 9일 가처분을 신청할 때 삼성물산 외에 최치훈·김신 사장과 이영호 부사장, 사외이사 네 명 등 회사 이사 일곱 명을 함께 소송대상에 올렸다. 엘리엇 측은 이 수석부장판사 의견을 받아들여 주총결의 금지와 관련해서는 회사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엘리엇이 삼성물산의 KCC에 대한 자사주 5.76% 매각을 문제 삼아 제기한 자사주 처분금지 가처분에 대해서도 불필요하게 이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외이사 등이 자사주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집행할 위치에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것. 엘리엇 측은 이에 대해서도 “잘 알겠다”고 답했다.

엘리엇 관련 재판을 지켜보고 있는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결과에 관계없이 어떻게든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면서 부담을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엇은 지난 5월 국내 한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삼성SDI, 삼성화재, 삼성생명 등 삼성물산 주주 계열사 세 곳의 임원 22명의 신상정보를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엘리엇은 “답변할 내용이 없다”며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이들 계열사가 합병에 찬성할 경우 업무상 배임 등으로 소송을 제기할 때 이들 임원도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엘리엇은 이에 더해 재판 과정에서 왜곡된 증거자료를 내고 주총 의결권 대리인을 허위 기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헤지펀드의 광폭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대목이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