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를 운영하는 배우 조재현은 “좋은 공연을 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서울 동숭동 수현재씨어터를 운영하는 배우 조재현은 “좋은 공연을 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배우 조재현은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주연급인 권력가 성대련 역을 맡은 영화 ‘김선달’과 그의 첫 영화감독 데뷔작인 ‘나홀로 휴가’를 함께 찍고 있어서다. 주말에는 SBS 예능 프로그램 ‘아빠를 부탁해’를 촬영한다.

이런 와중에도 16일 전남 나주에서 열리는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 공연 무대에도 선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서울 대학로에서 주인공을 맡아 공연했던 작품이다. 이때에는 KBS 드라마 ‘정도전’에 출연 중이었다.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만난 그는 “연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이라고 했다. 조재현은 지난해 2월 서울 동숭동에 300억여원을 들여 250~350석 규모의 극장 3개로 구성된 6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이 중 2개관은 대관하고, 한 곳은 ‘수현재씨어터’란 이름으로 직접 운영하고 있다. 1년6개월간 연극전용 극장을 운영한 소감을 물었다.

“차라리 이 돈으로 대학로가 아니라 강남에 건물을 샀으면 훨씬 큰돈을 벌었을 거예요. 주변에서 이제는 자리 잡았다고들 하는데, 매년 내야 할 은행 이자만 4억원이 넘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니까 하는 거예요. 하하!”

말은 이렇게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꿈을 이뤄서다. “제가 여기 동숭동 판자촌에서 태어났어요. 빽빽한 판잣집 사이에 서울대 문리대 운동장이었던 이곳을 형과 뛰어다녔죠. 그랬던 동숭동이 청춘의 거리가 되자 생각했습니다. 제가 태어난 이곳에 연극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극장을 짓자고요.”

그는 젊은 세대뿐 아니라 40~50대 이상이 찾아올 수 있는 극장을 운영하고 싶었다. 연극 ‘스피킹 인 텅스’ ‘리타’ ‘미스프랑스’처럼 젊은 감각의 작품과 ‘잘자요, 엄마’ ‘황금연못’ ‘민들레 바람 되어’ 등 중장년층 대상 작품을 섞어 공연하는 이유다.

그는 개관 이후 폭넓은 인맥을 동원해 공효진 강혜정 김용림 나문희 등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을 줄줄이 연극무대로 불러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3일부터 공연 중인 ‘잘자요, 엄마’에는 엄마 역에 김용림과 나문희를 캐스팅했다. 김용림은 7년 전에도 섭외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때 조재현이 말했다. “언제까지 TV만 하실 겁니까.” 이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박힌 김용림은 결국 20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왔다.

“후배 중엔 제 전화번호를 차단해 놓은 친구도 있어요. 하도 귀찮게 하니까요. 기획사에서도 배우들이 연극을 하는 걸 싫어해요. 돈도 안 되고, 못하면 망신만 당하니까요. 그런 배우들을 연극판으로 끌어오는 게 제 일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될 테니까요.”

그는 자신이 제작한 연극을 드라마, 영화로 옮기는 ‘가교’ 역할을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가 극작·연출한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2009년에 이어 다시 TV드라마로 제작된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도 영화로 제작된다.

공연 제작자로서 연극 생태계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그는 “수현재컴퍼니는 대학로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매출의 일정 부분을 작가에게 로열티로 지급한다”며 “손해가 나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작품 흥행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한다. 연극 ‘리타’는 공효진 강혜정을 앞세워 이른바 ‘대박’을 기록했다. 하지만 손실을 낸 작품도 여럿 있다. 그는 “연극은 뮤지컬과 달라서 공연이 잘 된다 해도 큰돈을 벌 수 없다”며 “주변에서 잘 정착했다는 얘기를 듣지만 그건 잘 되는 공연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매번 망하면 안 되겠지만 한번 실패해 빚 지면 다음 작품으로 만회해서 갚으면 돼요. 연극 해서 돈을 벌 수 있나요? 어려운 연극판에서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좋은 공연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