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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이란 핵협상 타결…혁명은 끝나고, 상업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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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월 이란의 팔레비 국왕이 미국으로 망명하고 프랑스에 망명해 있던 종교지도자 호메이니가 귀국해 정권을 잡았다. 그 전해인 1978년 9월8일 ‘검은 금요일’에 시민 1600여명이 탱크와 헬기를 앞세운 정부군의 총칼에 희생된 이후 혼란이 계속돼온 이란이었다. 독재왕정이 타도되고 신정체제가 세워졌다. 소위 ‘이란혁명’이었다.

    이슬람원리주의로 돌아간 이란은 세계의 골칫거리였다. 그해 10월 이란이 산유량을 줄이면서 제2차 석유파동이 세계를 강타했다. 11월에는 학생시위대가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했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런 이란이 우여곡절 끝에 핵을 버리고 다시 세계 시민국가로 돌아왔다. 서방의 경제 압박에 떠밀린 핵협상이었지만, 혁명 이전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이었던 나라답게 이란은 ‘문명적으로’ 협상에 참여했다. 미국 공화당 등 일부는 이란 핵의 현 상태 유지를 전제로 한 잘못된 협상이라고 반발하고 있지만 중동에서 핵개발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만 해도 큰 진전이다.

    물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이란이 지역 패권을 놓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사우디·이스라엘 연합 세력과 맞설 수도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군사 분쟁 가능성은 낮아진 것이 확실하다. 최소한 이스라엘이 핵개발을 이유로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은 없어진 것이다.

    핵협상 타결로 미국의 외교전략 수정도 예상된다. 셰일가스 개발로 중동의존도를 크게 줄인 미국은 셰일가스 수송로인 태평양으로 외교의 초점을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북한의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서방과의 핵협상 과정에서도 불투명한 태도로 제재를 자초하고 있다. 북한은 아직 문명국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중·미 외교의 틈바구니가 만들어내는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북한핵 문제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

    이란이 세속국가로 다시 돌아왔다. 쿠바도 최근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바야흐로 혁명의 시대는 끝났다. 중동과 지구촌에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상업의 시대, 상인이 활동할 순간이 왔다. 한국의 상인들은 분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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