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대표적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와의 대결에서 이겼지만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주주가치 확대와 투명성 확보라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 미국 월가에서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7일 “엘리엇은 설립 후 38년 동안 연간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이 두 번에 불과할 정도로 탄탄한 실력과 함께 전통을 인정받고 있다”며 “창업자 폴 싱어 회장 역시 월가의 실력자인 만큼 이번 사태의 파장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월가의 대체적인 정서도 엘리엇에 우호적”이라며 “경영의 비효율성과 지배구조를 개선해 주가를 올린 뒤 투자수익을 높이려는 행동주의의 속성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월가에서는 이번 사태가 엘리엇의 적극적인 투자전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기존에 투자한 삼성 관련 주식의 지분가치를 지키려 했다는 측면도 있다고 보고 있다. 월가의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엘리엇은 삼성을 상대로 공격하려 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대응했을 뿐이라는 얘기를 한다”며 “진위를 떠나 삼성도 글로벌 기업으로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싱어 회장이 상당한 액수의 정치헌금을 내는 등 미국 정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엘리엇과의 대립 끝에 아슬아슬한 표차로 삼성물산 합병이 성사됐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분노한 소액주주와 엘리엇과의 법적 공방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 엘리엇이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삼성화재삼성SDI 지분을 1%씩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들 회사가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