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 광역5팀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 16일 서울청 CSI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가상 살인사건 현장 증거수집 실습에서 범인의 발자국을 채취한 젤라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병언 기자misaeon@hankyung.com
서울지방경찰청 광역5팀 과학수사요원들이 지난 16일 서울청 CSI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에서 열린 가상 살인사건 현장 증거수집 실습에서 범인의 발자국을 채취한 젤라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병언 기자misaeon@hankyung.com
서울지방경찰청 지하 2층엔 오피스텔이 있다. 전용면적 60㎡ 크기에 주방, 소파와 탁자가 있는 거실, 책상과 침대 등이 있는 안방, 화장실 등을 모두 갖췄다. 누가 들어와 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이곳은 훈련 장소다. 주택 등에서 강도 살인 강간 등의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출동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훈련할 수 있도록 오피스텔과 똑같은 구조로 꾸민 것이다. 서울청이 지난 9일 개관한 CSI 과학수사 현장실습장이다.

개관 후 첫 실습이 16일 열렸다. 서울 성동·중랑·광진구를 관할하는 광역5팀의 과학수사요원 6명이 참가했다. 실습장은 과거 발생한 살인사건을 본떠 꾸몄다. 피해자는 양손을 청테이프에 묶인 채 거실 소파에 죽어 있고 거실 중앙까지 피가 떨어진 채 굳어 있었다. 어질러진 안방에서는 화장대 서랍 안에 있던 30만원과 귀금속이 없어졌다. 간략히 상황 설명을 들은 광역5팀 요원들은 곧 현장에 투입됐다.

발자국과 혈흔, 지문…“놓치지 마라”

현장 채증은 징검다리를 놓듯 거실과 화장실, 안방 등지에 A4용지보다 조금 작은 플라스틱 통행판을 하나씩 놓는 것으로 시작됐다. 요원들의 발이 현장에 닿아 증거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범인과 피해자가 통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장소를 피해 거실 가장자리에 설치했다.

다음은 범인의 동선 파악에 나섰다. 실내의 모든 조명을 끄고 측면으로 빛을 비추는 특수제작한 손전등으로 바닥을 훑었다. 형광등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과 사람의 발자국 등 여러 단서가 드러났다. 요원들은 발자국 크기를 자로 재고, 스티커처럼 바닥에 붙였다 떼면 발자국이 그대로 옮겨지는 젤라틴판으로 범인의 족적을 채취했다.

이어 본격적인 증거 수집을 시작했다. 굳은 혈흔에 증류수를 묻힌 면봉을 문지르자 혈액이 묻어나왔다. 요원들은 이를 보관함에 넣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재떨이에 있던 담배 두 개비를 핀셋으로 들어올려 봉투에 넣었다. 담배에 묻은 침에서 유전자 정보를 채취하기 위해서다. 탁자에 놓인 컵에도 주목했다. 범인의 지문이 남아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요원들이 브러시에 형광 분말을 묻혀 컵을 쓸어내리고 푸른 불빛을 비추자 지문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현장 증거를 채집한 뒤에는 마네킹으로 연출된 피해자 시신을 수습했다. 먼저 테이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접착 성분만 일시적으로 녹이는 박리제로 피해자의 양손을 묶은 청테이프 접착면을 녹이기 시작했다. 피해자를 결박하는 과정에 범인이 지문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손톱도 깎았다. 몸싸움을 벌이는 등 범인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범인의 피부 조직이 남아 있을 수 있어서다.

현장 채증이 끝나자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냉방을 최대로 했지만 광역5팀 요원들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안동현 서울청 과학수사계장은 “그나마 간편하게 실습할 수 있도록 현장을 꾸며서 그렇지 실제로는 6~8시간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각 지방경찰청에 훈련장 설치

과학수사 현장 실습장은 충남 아산 경찰교육원에 있다. 위치가 멀다 보니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 경찰들은 자주 찾기 힘들었다. 경찰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경찰청마다 실습시설을 마련하기로 했고 전북청에 이어 서울청이 문을 열었다.

실습장에서는 현장 파악과 증거 수집, 범행 재구성 등의 단계로 6명의 팀원이 역할을 분담해 협업하는 능력을 기른다. 안 계장은 “사건 현장에 나갔을 때 각자 맡은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증거를 놓치지 않는다”며 “있는 증거도 경찰이 못 찾으면 없는 게 되는 만큼 증거를 찾기 위한 팀워크를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실습을 기획·감독한 이재준 기법감정팀장도 “요원 각자가 전문가라 하더라도 팀으로 일할 땐 각자 맡은 역할을 물 흐르듯이 수행해야 모든 증거를 효율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청은 오는 9월부터 두 달간 관내 30개 광역과학수사팀 모두를 실습장에 불러 한 차례씩 교육한 뒤 평가 결과가 가장 우수한 팀에 서울청장 표창을 할 예정이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