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외환은행 노조와의 조기합병 합의는 묵시적 통합일 뿐”이라며 “내년 초까지 하나, 외환은행을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실질적 통합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외환은행 노조와의 조기합병 합의는 묵시적 통합일 뿐”이라며 “내년 초까지 하나, 외환은행을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실질적 통합을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63)은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을지로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속된 말로 힘들어 죽겠다”고 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과 하나·외환은행 조기 합병을 놓고 2박3일간 밤샘 협상을 벌인 여파로 보였다. 김 회장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외환은행 전·현직 노조위원장을 만나 끈질긴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9월1일 합병’ 합의를 전격적으로 이끌어냈다.

1년여를 끌어온 협상을 잘 마무리지은 덕분인지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오는 9월이면 자산 338조원(신탁계정 포함) 규모의 국내 최대 은행으로 재탄생하는 KEB하나은행(가칭)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일류 은행으로 도약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합병에 대비한 조직 개편, 전산망 통합 등 할 일이 쌓여 있다며 “쉴 틈이 없다”고 했다. 또 “외환은행 노조와의 합의로 하나·외환은행의 묵시적 통합을 이뤘지만 화학적·실질적 통합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기 합병 이후 인위적으로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신규 인력을 더 많이 뽑아 보다 젊고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9월 출범하는 KEB하나은행은 자산 규모에서 국내 최대 은행이 됩니다.

“2012년 외환은행을 인수했지만 하나·외환은행이 쪼개져 있어 힘들었는데 앞으론 해볼 만합니다. 화학적·실질적 통합은 이제부터 시작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일류 은행으로 도약해야지요. 미래를 글로벌 시장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외환 업무에 경쟁력을 갖춘 외환은행과 프라이빗뱅킹(PB)에 강점이 있는 하나은행이 통합 시너지 효과를 내서 해외 진출을 확대하고 글로벌 일류 은행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박3일 밤샘 협상 끝에 조기 합병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하나·외환은행 조기 합병을 추진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경영진이 직원들과 소통을 잘했고, 모두가 열심히 해줬어요. 외환은행 노조가 진정성을 믿어준 덕분에 협상이 잘 끝날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성사되려면 임계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물이 99도까지 안 끓다가 1도 차이로 100도가 되면 펄펄 끓습니다. 이번 협상도 (노사가) 대립하다가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에 딱 도달한 거죠.”

▷노조가 전격 합의한 이유를 뭐라 생각하십니까.

“상황이 진짜 어렵다는 걸 노조도 안 것이죠. 자체 집계를 보면 외환은행은 5월과 6월 연속 적자를 냈습니다. 거기다 금융환경도 갈수록 힘겨워지고 있어요. 1분기에 경남기업 부실, 2분기엔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들이 어려웠습니다. 대규모 부실이 드러난 대우조선해양 문제가 조속히 수습되지 않으면 (은행들이) ‘한 방’에 갈 수 있어요.”

▷지난 10일 노조위원장과의 술자리가 합의의 시작점이라고 들었습니다.

“협상 과정은 밖에 얘기하면 안 되는데…. 일단 술을 먹으면 술술 풀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웃음) 밖에선 이면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던데, 그런 거 없습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나중에 다 드러나요. 이번 합의는 서로를 신뢰하고 진정성을 봤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술자리에서 노조 간부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당신들도 외환은행 직원들을 사랑하고 은행이 잘되는 게 목적 아니냐, 나도 똑같다’고….”

▷과거 서울은행 인수 때도 협상을 주도한 것으로 압니다만.

“하나은행의 충청은행, 보람은행, 서울은행 인수 과정에 모두 관여했습니다. 지금까지 그 은행 출신 직원들 모두 인사 불이익을 전혀 받은 게 없어요. 하나은행에 보람은행, 서울은행 출신이 수두룩해요. 이번에도 외환은행 노조 간부들에게 무조건 나를 믿어 달라고 했어요. 인간 김정태의 진정성을 알아 달라고 했죠. ”

▷통합은행명에 외환은행 영문 이름인 ‘KEB’를 넣기로 했습니다.

[월요인터뷰]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글로벌 시장에서 미래 찾겠다…일류은행 이끌 젊은 사람 더 뽑을 것"
“외환은행을 영어로 ‘Korea Exchange Bank’라고 풀어 설명하면 해외에선 ‘환전소’ 정도로 축소해 받아들일 수 있죠. 또 ‘외환’이란 이름을 중국에서 쓰면 우환(憂患)을 연상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KEB라고 축약하면 참 좋습니다. KEB 자체가 해외에서 갖는 브랜드 인지도도 높고요. 사실 하나카드도 영문 사명은 ‘KEB하나카드’예요. 그룹 브랜드위원회에서 처음에는 ‘하나카드’로 하자는 안을 냈는데, 내가 KEB를 넣자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번 합의에서 통합은행명보다 존속법인을 외환은행으로 정했다는 게 더 의미있다고 봅니다. 하나·외환은행이 합쳐지지만 뿌리는 ‘외환’이라는 명분을 외환은행 직원들에게 줬기 때문이죠.”

▷통합은행장으로 누가, 언제 선임 될지 관심이 많습니다.

“그건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입니다. 다만 하나은행장과 외환은행장 등 여러 후보 가운데 통합은행장을 지금 정해버리면 탈락한 후보자는 공식 합병 때까지 놀지 않을까요. (웃음) 일단 통합은행장은 합병기일인 9월1일에 임박해 정해질 것입니다. 다음달 금융위원회에 본인가를 낼 때는 통합은행명과 집행임원만 정해 제출할 예정입니다.”

▷하나, 외환은행장 외에 제3의 후보도 나올 수 있습니까.

“(하나·외환은행장 중 한 명이 통합은행장이 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상식 수준에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통합은행장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고 보십니까.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사안이기 때문에)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통합은행 출범일(9월1일)까지 남은 한 달 반 동안 돈 많이 벌고 직원들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금융 회장이 통합은행장을 겸직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그런 건 전혀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서 지금은 누가 통합은행장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실질적 통합을 이루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산시스템 통합, PMI(합병 후 조직관리) 등을 잘 마무리지어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게 필요한 때죠. ”

▷인력 구조조정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가요.

“통합은행의 임원은 두세 자리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칠 것입니다. 작년부터 하나·외환은행 간 겸직을 많이 추진한 덕분에 크게 줄이지 않아도 됩니다. 직원 구조조정은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매년 정년퇴직 등으로 자연 감소분이 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아도 됩니다.”

▷두 은행 통합 이후 신규 인력 채용 규모는 줄여야 하지 않나요.

“아니죠. 더 뽑아야 합니다. 정년퇴직 등 자연 감소분이 있지만 인력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나·외환은행의 인력구조는 간부급 인력이 훨씬 많은 항아리형이에요. 이를 피라미드형으로 바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젊은 사람을 더 많이 뽑아야 합니다. 인력구조 재편과 함께 일류화 전략을 펼 생각입니다. 외환은행이 잘하는 게 위폐 감별, 외화자금 관리, 투자은행(IB) 업무 등이에요. 이런 장점을 하나은행과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하나·외환은행 지점 통합은 어떻게 추진할 계획입니까.

“두 은행 간 중복 점포가 30~40곳 정도였는데 이미 교통정리를 마쳤어요. 영업점 간 직원 교류는 전산시스템 통합이 끝날 때까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전산통합이 되기 전까지는 하나은행 고객이 외환은행에 가더라도 업무를 볼 수 없거든요. 전산통합은 내년 설 이전까지 마칠 계획입니다.”

■ 김정태 회장은…

35년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은행권에서 보낸 은행맨이다. 1981년 옛 서울은행에 입사한 뒤 신한은행을 거쳐 1992년 창립 멤버로 하나은행에 합류했다. 그는 ‘영업통’이다. 하나은행장과 하나대투증권 사장 시절 최고 영업실적을 올려 하나금융그룹 내에선 ‘영업의 달인’으로 불린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2012년 김승유 회장 후임으로 하나금융그룹 회장에 올랐다.

‘큰형님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화통하고 솔직한 성격에 특유의 친화력으로 임직원을 대한다. 그의 별명은 ‘JT’다. 영문 이름 약자이면서 ‘Joy Together(함께 즐기자)’의 뜻도 담고 있다. 지위와 격식을 모두 내려놓고 임직원과 소통하겠다는 그의 경영철학이 함축돼 있다고 하나금융 측은 설명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금융빌딩 15층에 있는 김 회장의 집무실 문패도 ‘회장실’이 아닌 ‘Joy Together’다.

△1952년 부산 출생 △경남고 졸업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하나대투증권 사장(2006년) △하나은행장(2008년) △하나금융그룹 회장(2012년~)

이태명/박한신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