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성장판을 닫자는 건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성장판을 닫자는 건가](https://img.hankyung.com/photo/201507/02.6938183.1.jpg)
미래 투자 줄이겠다는 정부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여섯 가지 혁신의 비밀을 풀어가는 한 대목이다. 존슨이 주목한 것은 인접 가능성, 상호 교잡, 네트워크 등을 통해 혁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른바 ‘공진화(共進化)적 상호작용’이다. 이렇게 해서 한 분야의 혁신, 혹은 일련의 혁신이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듯한 변화를 결국에는 끌어낸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저성장을 두고 ‘혁신의 고갈론’을 펴며 비관론적 주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그 반대다. 브라이언 아서, 폴 로머 등 기술경제학자들은 혁신은 가용한 지식 조각들(building blocks)의 결합만 갖고도 무한히 계속될 거라고 주장한다. 다만 어떤 결합이 혁신을 가져올지 그게 문제다. 국가마다 연구개발(R&D)을 독려하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의 R&D 투자를 합하면 전 세계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그만큼 혁신을 위한 결합 시도가 많다고 보면 미국이 혁신을 선도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최근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R&D 투자를 급속히 늘리는 중국이 겁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R&D까지 대기업 때리기 하나
반도체를 빼고는(이마저 5년 후는 장담 못하는 상황) 믿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산업위기론에 휩싸인 한국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내년 R&D 예산을 줄이겠다는 모양이다. 불길한 징조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지만 언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창조경제를 내건 정부에서 R&D 예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과거 추격형 발전 과정에서나 통했던 선택과 집중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식상하다.
정부가 R&D 예산을 줄이면 기업이라도 R&D 투자를 더 하게 해야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국가 전체 R&D 투자의 78%가 넘는 기업에 대한 R&D 세제 지원도 일제히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업 전체 R&D의 74%를 담당하는 대기업이 타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세액공제를 더 많이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R&D 세제는 기업이 R&D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인하자고 만든 제도다. 대기업의 세액공제가 많은 건 그만큼 투자를 많이 한 결과일 뿐이다. R&D 투자 비중에 비해 세액공제 비중이 더 높은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에 돌아갈 세액공제 몫을 가로챈 것도 아니다. 반(反)대기업도 아니고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정부는 혹시 R&D 투자를 시작한 지 겨우 몇 십년밖에 안된 한국이 지난 몇 백년간 투자를 한 선진국과 경쟁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건 아닌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