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기자 "매우 우려…여론 수렴 충분히 안돼"
소니회장 출신 BBC 이사 "일본기업 인수가 나쁜 것 아니다"


127년 역사를 지닌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일본 미디어기업에 매각된다는 발표에 FT 기자들이 충격에 빠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경제 일간 FT는 영국을 대표하는 언론 가운데 하나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함께 세계 유력 경제일간으로 꼽힌다.

영국 교육·미디어기업인 피어슨은 23일(현지시간) 오후 FT 그룹을 현금 8억4천400만파운드(약 1조5천억원)에 일본 미디어회사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닛케이)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런던 템스 강변에 있는 FT 본사 사옥과 주간 이코노미스트 지분 50%는 매각에서 제외된다.

앞서 이날 오전 피어슨은 FT 그룹을 매각하기 위한 "진전된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만 공개했다.

이에 인수 대상인 FT는 피어슨이 최근 몇주간 독일 최대 미디어그룹인 악셀 슈프링어와 닛케이와 협상을 벌여왔다면서 악셀 슈프링어를 유력 후보로 보도했다.

그러나 몇시간 뒤 나온 공식 발표는 악셀 슈프링어가 아니라 일본 닛케이였다.

가디언은 FT 기자를 인용해 오후 4시에 예정된 리오넬 바버 편집국장의 설명을 앞두고 "대혼란"이 있었다고 전했다.

FT 한 기자는 "이번 사태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 매우 갑작스럽게 발표됐다. 잠재후보 두 곳에 대한 얘기가 있었지만 (기자들의) 여론을 수렴할만한 충분한 시간은 없었다"며 불안해했다.

존 팰론 피어슨 최고경영자(CEO)는 "이제 글로벌 교육 전략에 100% 집중할 것"이라면서 교육사업부문에 전념하기 위해 FT를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교육사업부문은 피어슨 매출의 90%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는 "모바일과 소셜미디어의 폭발적 성장으로 전환점을 맞은 미디어 환경 아래 FT가 글로벌 디지털 뉴스 기업의 일원이 되는 게 최선의 길"이라고 덧붙였다.

구글, 페이스북 등 같은 소셜미디어의 미디어 기능이 급부상한 뉴미디어 환경이 FT 매각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임을 내비친 것이다.

FT도 종이신문 감소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지난 4월말 현재 전체 유료가입자 72만2천명 중 온라인 유료가입자가 70%에 달한다.

FT 자체 경영수지는 공개되지 않지만, 흑자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어슨 전임 CEO 마조리 스카디노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FT 매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팰론 CEO도 2013년만 해도 FT는 "매각 대상이 아니다"고 언급한 바 있지만 이후 피어슨이 교육사업부문 이외 자산을 꾸준히 매각하면서 FT 매각설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FT가 일본 미디어기업에 매각된 것을 놓고 영국 언론의 우려섞인 시각도 엿보인다.

가디언은 "일본 기업이 기업을 사들이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일본 기업들은 다른 대부분의 기업이 인수 기업을 대할 때보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경향을 보인다"는 소니 회장을 지낸 하워드 스트링어 BBC 이사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