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7월27일 오전 7시12분

[마켓인사이트] 명의만 빌려주는 '바지사장'처럼…'껍데기 주관사' 양산하는 일괄신고제
기업의 자금조달 편의를 봐주기 위해 2012년 도입된 ‘회사채 일괄신고제도’가 이름뿐인 대표주관사를 양산하고 있다. 대표주관사의 의무인 수요예측과 정밀실사를 건너뛰는 것은 물론 가장 기본적인 총액인수(의무매입) 물량도 소액에 그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주관사의 시장예측 능력과 물량인수 역량을 키운다는 수요예측 제도의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름뿐인 대표주관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B투자증권은 지난 14일 신한금융지주회사가 일괄신고제도에 따라 발행한 2000억원어치 회사채의 단독 대표주관사를 맡았다.

이 거래는 인수단 중 한 곳인 교보증권이 가장 많은 700억원어치(35%)의 회사채 총액인수를 책임져 눈길을 끌었다. 대표주관사인 KB투자증권(300억원)의 두 배를 웃도는 액수다. KB투자증권의 인수 물량은 인수단 5곳 중 메리츠종금증권(500억원)과 신한금융투자(400억원)에 이은 4위에 그쳤다. 회사채 대표주관사는 보통 대형 증권사가 맡아 가장 많은 인수물량을 책임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괄신고제도 발행시장에서 비상식적인 발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표주관사들이 발행을 책임졌다고 보기 힘든 사례는 많다. 지난달 4일 일괄신고제도로 발행한 한국남부발전 회사채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표주관사인 한화투자증권이 전체 1000억원 중 200억원어치 인수를 책임진 반면 한양증권은 더 많은 30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작년 12월 한국남동발전 역시 대표주관사인 NH투자증권이 전체 1000억원 중 100억원을 떠안은 데 비해 골든브릿지와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은 그보다 많은 20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사전 투자자 확보’ 의심

전문가들은 대표주관 경쟁력이 약해진 중소형 증권사들이 회사채 수요 예측 등을 거치는 일반 회사채 발행제도를 피해 일괄신고 회사채 시장 공략을 강화한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사전에 기관투자가와 미리 금리를 협의해 대강의 인수물량을 확정한 뒤 입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인수수수료만 챙길 뿐 대표주관 실적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대형사들에 형식적인 주관사 업무가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사전 금리 협의’는 가격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이유에서 금지돼 있다. 그러나 수요예측을 하지 않는 일괄신고제도 시장에선 이 같은 협의 여부가 겉으로 드러나기 어렵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 투자자 친분에 의존한 사전매각 방식의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며 “팔리지 않은 물량을 인수할 수 있는 역량이 모자라다 보니 일괄신고 시장이 공략 대상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회사채 일괄신고제도

회사채를 자주 발행하는 기업이 특정 기간 발행예정 규모를 금융위원회에 미리 신고하는 제도. 회사채 수요예측을 하지 않아도 되고 증권신고서 작성과 실사도 약식으로 할 수 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