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는 대로 멍하니 살아오다 봉사할 기회가 주어져 정신을 번쩍 차렸죠.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사회에 봉사하며 멋지게 마무리할 겁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인 ‘소리꾼’ 장사익 씨(66·왼쪽)는 유니세프 직원들과 함께 필리핀 레이테주 타클로반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타클로반은 2013년 11월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어 현재까지 피해 복구 작업이 한창인 곳이다. 그는 지난 20일부터 닷새 동안 이 지역을 방문해 복구 현황을 살폈다. 지난 4월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된 뒤 친선대사로서 처음 한 대외활동이다.

장씨는 “집 잃은 이들을 위한 수용시설에서 한 사람이 지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쪽방에 네댓 명이 사는 걸 보고 놀랐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악을 쓰거나 찡그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특히 눈이 맑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면서 ‘이 아이들이 필리핀의 희망이자 에너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리꾼’으로서의 재주와 흥은 필리핀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장씨는 시간과 장소가 허락되는 대로 노래를 부르며 재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필리핀 사람들과 현지 복구 작업을 돕는 유니세프 직원들을 위로했다. 그는 “빈민가 어린이들을 만나 함께 노래했다”며 “박수를 쳐서 용기를 북돋우니 경계하던 아이들이 차례로 일어나 신나게 목청을 뽑더라”고 말했다.

장씨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의 인연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콘서트 수익금을 유니세프에 꾸준히 기부해온 그는 2007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특별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맡은 지는 이제 석 달 남짓 됐다. 그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는 앞장서서 나누고 봉사해야 하는 자리”라며 “인생의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가 된 뒤 그가 가장 많이 떠올린 사람은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이다. 앙드레 김은 생전에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발히 활동했다. “마흔다섯 살에 가수가 되기 전 서울 신사동 카센터에서 종업원으로 일했어요. 그때 앙드레 김 선생님이 가게 단골손님이었요. 제가 가수가 된 후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때마다 맨 앞 두 줄의 표를 몽땅 사서 외국 대사들을 초청하셨어요.”

장씨는 “앙드레 김 선생님의 아동인권 보호와 민간외교 정신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며 “다음 세대의 주인인 아이들이 잘돼야 인류 역사가 계속될 수 있으며, 이는 모두 어른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