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이어 한국인 두 번째
한지 오브제 작업으로
동양 정서·서양 조형 결합
미술 한류 알리려 고군분투
20년간 지구 100바퀴 돌아
![전광영 화백이 경기 성남 판교의 스튜디오에서 현대인의 고뇌를 담아낸 자신의 대형 설치작품 ‘집합’을 설명하고 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08/AA.10327386.1.jpg)
지난 5월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됐던 전 화백이 또 한 번 큰일을 해냈다. 전 화백은 세계 최대 문화예술축제인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 한국 대표화가로 초청돼 지난달 31일부터 초대전을 열고 있다. 한국 작가의 에든버러 초대전은 백남준에 이어 두 번째다.
전 화백은 다음달 26일까지 에든버러 시내 도보코미술관에서 평면 및 대형 입체작품 10여점을 내보인다. 작품 운반과 기획 등 모든 전시 비용은 스코틀랜드에서 지원받았다. 그는 세계적인 행사에 초대된 데 대해 “한지 오브제 작업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동양적 정서와 서양적 조형논리를 동시에 소화해 낸 게 눈에 띈 것 같다”고 말했다.
전 화백은 지난 20여년간 삼각형 모양의 작은 스티로폼을 고서(古書) 한지로 싼 후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붙이거나 설치하는 작업을 해왔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미국 필라델피아대에서 유학까지 했지만 40대 초반까지도 국내 화단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1990년대 초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늘 봐왔던 한약 봉지에 착안한 작품을 내놓았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과 영혼이 지문처럼 남겨진 고서를 활용한 그의 작품은 스위스 바젤 등 굵직한 아트페어에서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2009년 미국 코네티컷주 얼드리치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초대전은 뉴욕타임스에 리뷰 기사가 실릴 만큼 좋은 평가를 얻었다. 일본 모리아트센터, 캐나다 몬트리올의 란다우 갤러리, 싱가포르 타일러센터, 미국의 와이오밍대 부설 미술관 등에서 연 개인전에도 국제 미술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자 세계적인 화랑들이 그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그는 이런 기회를 그저 가능성으로만 놔두지 않았다. 당장 뉴욕의 메이저 화랑 해스티드 클라우틀러를 비롯해 런던 버나드제이콥슨, 캐나다 란다우 파인아트, 독일의 벡앤에글링, 홍콩 팔람 등과 잇달아 전속 계약을 맺고 글로벌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전 화백은 그러나 국제 미술시장을 개척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작가들은 한국 작가에 비해 여러 가지 강점을 갖고 있다. 제작기법, 아이디어, 인지도, 유통 지배력, 마케팅 측면에서 그렇다. 그는 “미술품 애호가를 찾는 데서 그칠 게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확실하게 잡을 그물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전 화백은 ‘예술 마라톤’에서 마지막 목표 지점을 향해 숨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80세가 되기 전까지 국제시장에서 ‘100만달러 작가’(100호 기준 그림값)가 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현재 그의 100호 그림값은 10만~20만달러 정도다. 그는 “국내 드라마 한 편당 평균 수출단가가 4378만달러 정도인데 투입하는 인력이나 장비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없다”며 “혼자 만든 내 그림이 점당 100만달러에 팔린다면 아마 드라마 한 편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기작가보다는 ‘훌륭한 작가’로 남고 싶다는 그는 오는 10월 미국 유명 화랑과의 새로운 전속 계약을 계기로 신작을 내보일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