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침묵의 암살자
요즘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그의 실제 이름은 엘드릭 톤트 우즈(Eldrick Tont Woods)다. 어디에도 ‘타이거’는 없다. 아버지 얼 우즈는 어려서부터 아들을 타이거라는 애칭으로 종종 불렀고 아들은 성장해 세계 골프계를 호령하는 호랑이가 됐다. 애칭이자 별명이 실제 이름처럼 된 것이다.

유명 골프 선수들에게는 다양하고 재미난 별명들이 따라다닌다. 아무래도 어제 새벽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 선수부터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침묵의 암살자(Silent Assassin)가 그의 별명이라는 건 잘 알려진 대로다. 플레이가 화려하지도 않고, 표정 변화나 말도 없으며, 걸음걸이도 차분하고, 갤러리에 대한 답례라고는 한 손을 잠깐 들었다 내리는 게 전부다. 조용조용, 있는 듯 없는 듯한 그가 어느 순간 리더보드 꼭대기로 올라가 있는 경우가 많아 그런 별명이 붙었다. 우아한 스윙과 화려한 외모로 이목을 끄는 여타 스타 플레이어들을 ‘조용히 해치우는’ 무서운 선수인 셈이다.

올해 한·미·일 3국 메이저 골프대회를 모두 석권한 전인지의 별명은 플라잉 덤보(Flying Dumbo).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아기 코끼리 캐릭터다. 호기심이 많아 주위에서 ‘팔랑귀’라고 놀리다 귀가 큰 아기 코끼리 덤보라는 애칭이 붙었다. 신지애 선수의 별명은 분필로 자에 대고 그은 듯, 공을 똑바로 친다고 해서 초크 라인(Chalk Line)이다. 일본서 인기가 높은 이보미 선수는 미소가 아름답다고 해 스마일 캔디다. 미소 천사 김하늘 선수도 비슷한 케이스.

외모와 투지가 남다른 최경주 프로가 탱크,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꺾은 양용은 프로가 ‘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리는 것도 유명하다.

살아 있는 골프의 전설 잭 니클라우스의 별명 골든 베어는 금발머리와 공격적인 골프 스타일에서 왔다. 백상어(그레그 노먼)도 비슷한 경우다. 190㎝에 가까운 큰 키로 부드러운 스윙을 구사하는 어니 엘스의 별명은 빅이지(Big Easy). 역시 키가 큰 한국계 미셸 위는 여기에 빗대어 빅 위지(Big Weisy)로 불린다. 슈렉(루이스 우스티젠) 바다코끼리(크렉 스태들러) 등 외모에서 붙여진 다소 우스꽝스런 별명도 있다.

미국 골프매체 골프채널은 박인비 이름 ‘Inbee’에 승리를 뜻하는 ‘Win’을 붙여 ‘Win-Bee’라는 신조어로 대기록 달성을 극찬했다. 앞으로는 박 선수의 별명을 좀 무시무시한 침묵의 암살자보다는 윈비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