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프리포트에 있는 다우케미컬의 화학 공장. 다우케미컬은 국제자연보호협회와 협력해 공장 인근 야생보호구역의 생태계를 유지·보호하는 데 힘쓰고 있다. ⓒTNC/사이언스북스  제공
미국 텍사스주 프리포트에 있는 다우케미컬의 화학 공장. 다우케미컬은 국제자연보호협회와 협력해 공장 인근 야생보호구역의 생태계를 유지·보호하는 데 힘쓰고 있다. ⓒTNC/사이언스북스 제공
[책마을] 환경보호는 경제발전의 걸림돌?…자연은 가장 합리적인 투자처
1996년 미국 텍사스주 시드리프트에 있는 한 대규모 화학 공장은 규제 압박으로 인해 하수 처리 설비를 확충해야 했다. 전통적인 해법은 막대한 양의 콘크리트를 쏟아붓는 것이다. 공장을 운영하는 기업은 하수 처리장을 짓는 비용으로 약 4000만달러를 산정했다. 시드리프트의 한 공학자가 새로운 해법을 경영진에 제시했다. 습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경영진은 자신의 경력을 내건 공학자의 해법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수 처리장을 짓는 대신 140만달러를 들여 공장 옆에 습지를 조성했다. 그 습지는 모든 환경 관련 규정을 준수하면서 하루에 약 1900만L의 물을 처리할 뿐 아니라 다양한 야생 동식물에 서식지를 제공했다. 이 기업은 세계 2위의 종합화학업체로 160여개 국가에서 영업하는 다우케미컬이다. 경영진이 습지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법이나 규제 때문도 아니고 홍수 등의 위험을 피하거나 홍보 효과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사업에 이로워서였다. 경영진은 선택지들을 저울질하고 장단점을 검토한 뒤 자연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골드만삭스 임원 출신으로 20년간 뉴욕 월가에서 투자은행가로 일했던 마크 터섹 국제자연보호협회 회장은 《나는 자연에 투자한다》에서 ‘자연 투자’의 가치를 말한다.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거나 복구하는 데 투자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인간의 건강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편다.

저자는 전통적이고 원칙적인 환경주의자나 자연보호주의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과 환경에 접근한다. 실용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자연에 자본과 자산 가치를 부여한다. 한발 더 나아가 투자은행가 출신답게 수익률 최대화, 자산 투자, 위험 관리, 다각화, 혁신성 제고 같은 개념을 기업이나 은행뿐 아니라 자연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경영 원칙을 통해 자연을 보면 자연보호의 혜택에 초점을 더 잘 맞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통해 자연보호주의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자연보호가 제조, 금융, 농업 등 경제 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과 자연보호단체가 손잡고 환경 전략을 추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강경한 환경 운동가들에게도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자연의 본질적 가치와 경이로움에만 초점을 맞추면 자연이 오로지 심미적 혜택만 제공하거나 더 심하면 부자나 부유국만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도덕적 당위보다 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더 민감하게 움직인다. 저자는 “기업과 정부, 개인에게 자연이 그저 경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가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방식 중 하나는 삶을 개선하고, 건강을 지키고,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문제들과 자연을 연관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 35개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 환경단체 국제자연보호협회는 시장 중심적인 접근법을 활용, 카길 코카콜라 다우케미컬 제록스 로열더치셸 펩시코 등 60여개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자연보호와 기업 가치 양 측면에서 성과를 창출하는 활동으로 명성이 높다. 자연보호의 가치를 기업 경영과 재무구조 측면에서 구체적인 숫자로 논할 수 있는 대표적 ‘에코-노미스트(eco-nomist)’로 꼽히는 저자는 이 단체의 최고경영자로서 자연의 가치를 수량화하고 자연에 대한 투자를 유도해 지속 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실현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그는 남태평양에서 캘리포니아 해안, 안데스 사막과 멕시코 만을 지나 미국 뉴욕까지 종횡무진 활동하며 직접 겪은 자연 투자의 과정과 생태적·경제적 성과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연 자본 개념을 기업의 의사 결정과 운영에 도입한 다우케미컬 등 자연의 가치에 투자하는 다국적 기업의 행보를 소개하며 사회적이고 친환경적인 지속 가능성 관련 사업을 펼치는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높은 성과를 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자연을 경제 성장의 방해물로 여기거나 채취 대상인 산업 원료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으며 경제 발전과 환경보호가 적대 관계라는 시각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시각으로는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기후 변화의 위험과 생태계 위협을 감당할 수 없다. 그는 “자연은 지속 가능한 경제적·생태적 혜택을 내놓는 가장 합리적이고 전도유망한 투자처”라며 “기업들은 자연 자본을 발굴해 투자함으로써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금전적 이득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