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은 지배 구조의 키워드로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꼽았다. 이 두 가지가 잘 돼 있는 기업의 주식은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중국 사업 실패로 촉발된 신동주 신동빈 형제 간의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도 ‘주주권 보호라는 공식적인 장치가 가족경영이라는 비공식적인 시스템과 충돌한 것’으로 해석했다. 특정인의 이해관계가 기업가치 극대화라는 경영의 주된 목적에 우선하는 모습을 띄었다는 진단이다.

LG GS 두산그룹과 에쓰오일, 금융회사 등의 기업지배구조가 좋다고 박 원장은 평가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이 최근 몇 년간 상장사의 ESG(환경경영, 사회 책임경영, 지배 구조)를 평가해 S, A+, A, B+, B, C, D 등 7개 등급으로 분류한 결과다. 정관이나 사외이사 구성 등이 잘 돼 있거나 지주회사 체제를 갖춘 기업, 사회 책임경영 또는 환경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기업의 등급이 높다고 그는 설명했다. 올해 평가 결과는 이달 중순께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본의 국적을 가지고 폄하하는 것 적절치 않아”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를 평가한다면.

“롯데 계열 상장사는 롯데쇼핑과 롯데하이마트 롯데손해보험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케미칼 롯데푸드 등 7개 사다. 지난해 평가에서 롯데그룹의 지배 구조는 20개 대규모 기업집단 중 14위로 한화 현대그룹 등과 함께 하위권이었다. 롯데푸드가 C 등급(주주 가치 훼손 여지가 큼)인데 계열사가 갖고 있는 지분이 많은 반면 최대주주가 직접 보유한 지분이 적다는 점, 계열사와의 거래 규모가 크고 사외이사가 1명뿐이라는 점 등 때문에 등급이 낮게 나왔다. 두산, GS, LG그룹 등이 상위권이었고 삼성그룹은 11위였다. 작년 평가 결과지만 비공개 자료의 일부다. 올해 평가 결과는 곧 나올 것이다.”

-롯데그룹이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일간의 왜곡된 역사의 산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용 창출, 임금 지급, 국내 투자, 세금 납부, 사회 공헌 등이 고려돼야 한다. 개방된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의 국내 회사 투자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많은 한국 기업들도 외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나가 돈을 벌고 있는 글로벌 경제시대다. 자본의 국적을 가지고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51.59%(6일 종가 기준)에 이르지 않나.”

◈“투자자 보호에 눈 뜬 ‘英美 자본주의’가 주식시장 꽃피워”

-지배 구조가 좋은 기업에 프리미엄이 붙을 것으로 보는가.

“학자들은 지배 구조가 좋은 기업의 프리미엄을 20% 안팎으로 보고 있다. 시가총액 1000억 원짜리 기업의 경우 투명성과 책임성이 좋으면 1200억 원 안팎까지 주가가 상승할 것으로 본다. 반대로 디스카운트도 발생한다. 과거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한 원인으로 남북한 대치 상황과 강성 노조, 유연하지 못한 정부 정책(또는 과도한 정부 개입)이 꼽혔는데 최근 5년간 기업 지배 구조의 불투명과 경영 독점 현상이 주원인이 되고 있다.”

-지배구조가 강하면 성장이 더딜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 부분에 대해 시각을 달리한다. 지배 구조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이슈다. 미국의 대표적인 연기금 캘퍼스(CalPERS·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 행동주의도 가장 자본주의적인 행동이다. 그것을 기업에 딴죽 거는 것으로 인식해선 안된다.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지배 구조가 좋을수록 경영 성과도 좋다고 인정한다. 그게 기업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는 논문도 많이 나와 있다. 지배 구조는 투명성과 책임성의 이슈이고 그것이 양호하면 기업의 시장가치를 자본의 대체비용 즉 순자산가치로 나눈 ‘토빈의 q’와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로 나타나는 시장에서의 평가는 무조건 좋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 사례가 있는가.

”가장 크게 본다면 관습과 불문법을 중시하는 영미 자본주의와 성문법(대륙법)을 토대로 한 유럽 자본주의를 비교할 수 있다. 판례 위주의 영미법은 투자자 보호장치가 잘 돼 있다. 징벌적 벌금(punitive penalty)을 먼저 도입한 게 대표적이다. 주가조작이나 경영자의 횡령에 대해 상당히 엄한 벌에 처했다. 반면 유럽 대륙은 성문법에 기초하다 보니 자본주의 경제가 갈수록 바뀌는데 거기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했다. 경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 페널티를 가한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걸 형사법으로만 다루다 보니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민사법으로 따라가는 것이 늦었다. 유럽에 비해 (주주권을 적극 보호해 기업지배구조를 강화한) 영국과 미국이 먼저 자본주의 주식시장의 꽃을 피웠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20세기에 영국과 미국이 강국으로 부상했다. 투자자 또는 주주권을 보호하는 제도(기업지배구조의 초기 개념)를 일찌감치 도입해 시장의 신뢰를 키운 결과 주식시장이 발달했다. 그래서 기업에 모험 자본을 원활하게 공급한 게 경제성장의 큰 뒷받침이 됐다. 자본시장이 커야 경제가 성장한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 들어와서야 소수 주주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상법을 개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본시장의 위험자본 공급능력이 영국이나 미국은 물론 홍콩보다 크게 뒤져 있다. 물론 유럽에선 은행 중심의 금융시장이 수백 년 동안 발달했다. 하지만 은행은 자기자본이 아닌 대출(타인자본, 부채) 형태로 자금을 공급한다. 그런 환경에서 기업은 부채비율을 한없이 높일 수 없다. 성장에 한계가 있다.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하는 주식시장이 먼저 발달한 영국과 미국의 경제가 유럽보다 훨씬 앞서게 된 것이다.”

◈“외국인, 중국 시장으로 눈 돌려…한국은 모멘텀 투자 대상”

-그런 관점에서 한국 자본시장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에선 1990년대까지 주식 유통시장이 굉장히 발달했다. 주된 배경은 지금의 중국과 비슷하다. 자금 성격이 투기적이고 단기적이었다. 투자자가 거래를 활발하게 하니까 증권사가 수수료 수입이 많아져 먹고사는 구조다. 그건 2차 시장이고 거기서 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코스닥 중심으로 1차 시장인 발행시장이 발달하면서 벤처 중소기업이 자금 조달을 받아 성장했다. 그 전까지는 은행 중심의 자금조달 체계였다.

성장단계에 있는 신생국가에서는 정부 주도의 일사불란한 자금 배분 정책이 상당히 효과를 거둔다. 특정 자본가를 키워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의 가장 큰 약점은 정부의 몇몇 관료가 어떤 비즈니스가 좋을 것이라는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 경제에 크게 노출된 한국 경제에서 더이상 유효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을 정부가 뒤늦게 깨달았다. 1990년대부터 자본시장을 키워 산업 구조 개편을 했어야 했다. 그걸 못한 게 외환위기의 배경이 됐다.”

-외국인들은 한국 자본시장을 어떻게 볼까.

“과거 퀀텀펀드 등 외국계 자본이 한국에 많이 투자했다.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보유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을 때도 있었다. 지금은 32~33%로 줄었다. 외국인이 중국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점이 작용했다. 평소 접촉하는 네덜란드나 캐나다의 연기금, 캘퍼스 등에 있는 인사들은 ‘이제 한국 시장에 장기투자할 메리트가 점점 없어진다. 아시아권에서 중국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해선 트레이딩 목적으로 포트폴리오 성격을 약간씩 바꿔 가고 있다. 모멘텀 투자 대상이다.’라고 말한다. 중국의 영향도 있지만 그런 판에 지배 구조 이슈가 계속 터져 안타까울 뿐이다.”

◈“한국기업 지배구조 OECD 최하위…태국 말레이시아에도 뒤져”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이다. OECD 국가 전체를 비교한 자료는 없지만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지난해 발표한 ‘CG워치 2014-마켓 랭킹’을 보면 한국은 11개국 가운데 8위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중국과 함께 하위 4개국 그룹(bottom four)을 형성하고 있다. 1,2위인 홍콩과 싱가포르는 물론 중간그룹인 태국 말레이시아 일본 타이완 인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사외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대주주나 경영진과 친분 있는 인사를 임명해 독립성이 없다. 이사회의 주주 대표성도 약하다. 지난해 전산시스템 선정 과정에서 촉발된 KB금융 사태도 이사회에 주주 대표가 없기 때문에 발생했다. 올해 KB금융지주가 이사회를 구성하면서 주주들에게 사외이사를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이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전환이다. 전반적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나아지고 있는데 이사회의 주주 대표성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주회사가 많이 만들어졌는데.

“지주회사와 자회사가 복수로 상장하면 일감 몰아주기 또는 빼먹기 이슈가 생긴다. 외국에서는 상장된 주식을 모두 지주회사 주식으로 교환한다. 지주회사만 상장하고 나머지 회사는 모두 비상장사가 되도록 해야 경영활동의 결과가 지주회사에 집중돼 지배 구조 개선 효과가 생긴다. 현행 지주회사 제도는 일감 몰아주기나 부의 이전(tunneling)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 것이다. 사실상 실패했다. 법의 취지나 방향은 옳았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법을 개정하면서 큰 실수를 했다.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토록 한 것을 20% 이상만 갖도록 개정했다.

최근 3년 동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 중 절반 가까운 게 지주회사다. 멀쩡한 상장사를 둘로 쪼개는 과정에서 대주주 지분이 올라가는 것도 문제다. 2013년 1월 동아제약이 동아제약과 동아쏘시오홀딩스로 분할할 때 돈 되는 박카스 사업을 동아제약으로 넘겨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한 게 대표적이다.”

◈“국민연금, 정부의 기업 개입 통로돼선 안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역할에 대해 말이 많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대부분 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다. 증권사들은 기업의 유상증자 딜을 따와야 한다. 미래에셋은 삼성전자 직원들의 퇴직연금 가입을 유치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주총장에서 감히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한다. 자본시장이 기업을 충분히 견제하지 못한다. 국민연금은 기관투자가 가운데 나름 독립적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으로 삼성은 국민연금에 빚졌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기업 개입의 통로로 활용해선 안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은.

“세계 각국 증권거래소는 상장하려는 기업에 지배 구조 모범규준을 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 ‘원칙 준수·예외 설명(Comply or Explain)’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상장 절차에는 이런 의무 규정이 아직 없다. 지배 구조가 잘 갖춰진 기업을 걸러서 기업공개를 해야 한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차등 의결권은 능력이 검증된 창업자에게만 도입해야 한다. 무능한 오너가 영원히 경영하도록 하는 게 이 제도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아무 기업에나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중소기업이 상장할 때 창업자 또는 대주주에게 차등 의결권을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테뉴어 보팅(장기 보유주주에게 추가 의결권을 주는 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포이즌 필(기존 대주주가 적대적 인수 공격을 당할 때 신주를 싸게 살 수 있는 권리·신주 인수선택권)은 미국에서 합법화된 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주총 특별결의 요건보다 더 까다로운 70% 동의라면 도입해도 좋다고 본다.”

◈“주주권은 보호해야 할 사적 재산권…기업이 주주에 신뢰 줘야”

-최근 잇따라 터진 지배 구조 이슈가 주는 시사점은.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가 나쁜 이유는 투자자들이 요구하지 않아서다. 주주권은 사적 재산권이다. 사적 재산권 보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달의 기본이다. 시민의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심지어 주총에 나가는 것조차 ‘내가 왜 굳이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 투자자로서 의식이 굉장히 떨어진다. 회사로 하여금 나쁜 관행을 더 뻔뻔하게 유지하게 만드는 그런 배경이 된다. 최근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이 기업지배구조원을 찾아왔다. 올해 지배구조 평가 결과에 관심을 가졌다. 기업도 변해야 한다. 지배구조 이슈가 계속 터지고 있는데 삼성이나 롯데 뿐 아니라 모든 상장 기업들이 시장이나 주주에 대해 신뢰를 주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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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명수 한경닷컴 뉴스국 부국장 max@hankyung.com
사진=변성현 한경닷컴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