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간신’의 장녹수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차지연(사진)이 명성황후가 돼 돌아왔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의 주인공 명성황후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뮤지컬 ‘서편제’ ‘드림걸스’ ‘카르멘’ ‘아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등 동서양을 오가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한 여인의 굴곡진 삶을 주로 연기해 왔다. 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그에게 2년 만에 잃어버린 얼굴 1895에 다시 출연하게 된 소감을 물었다.

“외모는 서구적이지만 제 속에는 국악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한국적인 색채가 짙은 작품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서편제의 송화나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도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역할이고요.”

그의 ‘구성진 소리’에는 남다른 배경이 있다. 차지연의 외조부인 송원 박오용 옹은 판소리 고법(鼓法) 인간문화재였다. 외삼촌 박근영도 명고수로 활약하고 있다. 차지연 역시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10년 이상 고수로 활동했다. 뮤지컬 서편제에서 그녀의 소리가 빛을 발한 이유다.

첫 스크린 데뷔작인 영화 간신에선 판소리 내레이션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영화 간신의 첫 시사회 날엔 제 목소리가 너무 어색해 귀를 막고 있었어요. 다행히 좋은 반응이 와서 감사했죠.”

2013년 초연한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는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희대의 요부’와 ‘조선의 국모’라는 엇갈린 역사적 해석에서 벗어나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야 했던 명성황후의 비극적 운명과 그녀의 삶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초연 당시에도 차지연이 명성황후 역을 맡았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뮤지컬 ‘명성황후’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인물을 조명하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뮤지컬 명성황후에서는 나라를 사랑하는 ‘국모’의 느낌이 강하게 그려지는데, 이 작품은 인물 간의 갈등을 더 극대화해서 표현해요. 한 여성으로서 원치 않는 상황에 이끌려 온 나날들, 그 외롭고 처절한 삶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 뮤지컬 명성황후와의 차이점입니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궁녀 선화가 자신을 대신해 처참히 죽는 광경을 목격한 뒤 ‘여긴 어디인가’를 부르는 장면이다. 가사도 작사가의 도움을 받아 그가 직접 썼다. “극 중 명성황후와 저는 비슷한 점이 많아요. 처음 시집 왔을 때의 여리고 소녀 같은 모습,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 내 안의 잔인함까지요. 결국은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어 했던 그녀의 모습이 저와 많이 닮았어요.”

2년 만에 다시 만나는 배우들과의 호흡은 작품에 한층 깊이를 더했다. 김옥균 역의 배우 김도빈은 그에 대해 “2년 만에 더 ‘괴물’ 같아졌다”고 표현했다. 뮤지컬 배우 10년차를 향해 달려가는 차지연은 초연보다 재공연을 할 때가 더 숨이 탁 막힌다고 했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솔직히 제가 천재였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괴로워요. 그럴수록 더 연습하고 연구해서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어요.”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