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 시인이 서울 가회동의 한 카페에서 책 표지 안쪽 에 직접 사인한 자신의 시집을 펼쳐 보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신달자 시인이 서울 가회동의 한 카페에서 책 표지 안쪽 에 직접 사인한 자신의 시집을 펼쳐 보이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흔히 손글씨를 ‘육필(肉筆)’이라고 합니다. 글씨가 곧 사람이니까요. 명필이든 악필이든 누군가가 직접 쓴 글씨는 모두 소중한 생명입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지난 4월 공동 발족한 ‘손글쓰기문화확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신달자 시인(72)은 최근 서울 가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신 시인은 “손글씨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된 세상 속에서 사람의 정성과 감정을 느끼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인 것 같다”며 “손글씨를 나누는 건 진심을 나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시인은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1회 교보 손글쓰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대중들의 손글씨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했다”고 전했다. 대회 방식은 단순했다. 책 속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문장을 손으로 필사해서 보내는 것이었다. 응모자가 총 2275명에 달했다. 아동과 청소년, 일반 등 세 부문별로 7점씩 총 21점의 우수작이 선정됐다. 이 작품들은 지난달 28일부터 한 달 동안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전시된다. 신 시인은 “대회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 줄 상상도 못했다”며 “내년부터 대회 규모가 더욱 커질 것이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손글쓰기 캠페인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글씨는 쓴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귀한 자산으로도 평가받는다. 신 시인은 “요즘엔 출판사에서 작가들에게 손글씨 원고 몇 장을 따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며 “모든 원고가 첨부 파일문서 형식으로 전달되면서 문인의 혼이 깃든 손글씨가 귀해졌다”고 설명했다. “컴퓨터 키보드로 쓴 건 누가 썼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손글씨는 달라요. 그 사람의 특징이 담겨 있죠.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희귀성이 손글씨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줄 겁니다.”

신 시인이 생각하는 ‘잘 쓴 글씨’란 무엇일까. 그는 “잘 쓴 글씨란 건 없다”며 “사람의 얼굴에 각자 매력이 다르듯, 손글씨 또한 잘생겼든 못생겼든 저마다의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필기도구도 따로 없다”고 했다. “볼펜이든 연필이든 만년필이든 평소 자신이 자주 쓰는 걸로 손글씨를 즐기면 됩니다. 종이도 너무 가릴 필요 없어요. 카페의 냅킨도 때로는 훌륭한 메모지가 될 수 있잖아요.”

신 시인이 요즘 손글씨를 쓸 때 좋아하는 종이는 한지다. 한지 특유의 빛깔과 질감, 잉크 번짐이 아름답게 느껴져서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지공책을 사다가 가끔 자신이 쓴 시를 직접 다시 써 본다고 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언어 선택의 감각만큼은 늙으면 안 된다”며 “아무리 내 작품이라 해도 세월이 지나 다시 써 보니 느낌이 또 새로워진다”고 말했다.

“손으로 글씨 쓰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라는 물음에 신 시인은 “고전 명작을 필사해 보면 손글씨의 진정한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성경 또는 불경, 사서삼경과 같은 경전 및 옛 성인들의 기록을 손으로 베껴 쓰다 보면 지구력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고, 잡념을 떨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전 작품을 필사하는 건 마치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것과 같은 고도의 수행”이라며 “각 문장 속에 깃든 의미와 에너지가 손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되면서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정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