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품격이 부러운 미국 공화당 TV토론회
웃음과 박수.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환호. 그것은 정치 행사가 아니라 한 편의 스포츠 게임이었다. 미국인들을 열광케 하는 미국 미식축구리그(NFL)나 미 프로농구(NBA) 게임 같았다. 행사장도 농구장이었다. NBA 소속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팀의 홈구장인 퀴큰론스 아레나.

지난 6일(현지시간) 이곳에서 열린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1차 TV 토론회는 각본 없이 진행됐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게 잘 준비된 한 편의 경기였다. 행사는 운동경기처럼 흥행 요소를 고루 갖췄다.

우선 행사 자체가 흥미롭다. 대선전의 서막으로 이 행사만 봐도 공화당 후보들의 판세를 가늠할 수 있다. 공화당원 120여명이 입후보한 것도 그렇다. 역대 가장 많은 숫자다. 경선을 관리하는 공화당전국위원회(NPC)는 후보를 추리고 또 추렸다. 지지율 1% 이상인 17명을 우선 뽑았고, 그중 지지율 상위 10명을 1부 리그로, 나머지 7명을 2부 리그로 나눴다. 모두 유례없는 일이다.

진행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실력이다. 거침없는 입담으로 지지율 1위에 오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아버지와 형을 대통령으로 둔 전직 주지사 젭 부시, 위스콘신주에서 강성 노조를 평정하고 주지사에 내리 3선한 40대 기수 스콧 워커 등 당내 기대주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이 두 시간 동안 벌인 신경전은 단어와 표정, 손짓 하나도 놓칠 수 없는 흥미진진한 경기였다.

AP와 AFP 등은 이를 ‘흥행 대작’이라고 평했다. 2400만명의 미국인이 행사를 시청했다. 토론회와 관련해 2000만건의 게시물과 댓글, 링크, 공유가 걸렸고 11억건의 트윗이 떴다고 한다.

정치 전문지인 ‘더 힐’ ‘폴리티코’ 등은 이런 흥행의 다른 배경으로 유머를 꼽았다. “지지율이 높다고 다 대통령이 되나요? 오 저기 계신 트럼프 씨 얘기가 아닙니다. 힐러리 얘기예요”(마이크 허커비 전 오하이오 주지사)처럼 시청자들과 당원들을 한꺼번에 무장해제시킨 ‘한 방 있는’ 유머들이 행사를 품격 있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딱딱한 진행 방식과 둔탁하고 날선 인신공격성 언어들로 가득한 한국의 대선 과정을 지켜본 입장에서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행사였다.

박수진 워싱턴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