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불꽃놀이·태극기 마케팅…'정부 입김'에 지쳐가는 기업들
지난달 말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급작스런 연락을 받았다.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정부가 전국적인 불꽃놀이를 계획하고 있는데,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담당하는 기업이 해당 지역에서 불꽃놀이를 책임지고 진행해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행사 담당자는 당황했다. “대형 불꽃놀이가 장난인 줄 아느냐, 행사를 보름 남짓 앞두고 알려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지시’를 거부할 순 없었다. 게다가 다른 기업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경우 회사를 망신시켰다는 핀잔만 들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담당자는 “일단 국가 광복을 기념하는 불꽃놀이를 왜 기업 돈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좋은 취지로 기업이 정부를 도울 수는 있는데, 행사를 불과 며칠 앞두고 명령하듯 과제를 던지는 건 솔직히 너무한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각 기업이 사옥에 대형 태극기를 내건 것도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불만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정부가 각종 정책이나 행사에 대해 기업의 협조를 구하는 차원을 넘어 마치 ‘명령’을 하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는 전언이다.

정부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창조경제혁신센터도 기업들엔 스트레스거리 중 하나다. 대부분 대기업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활용해 중소기업을 돕고 창업을 촉진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실적을 보여주기 위해 자꾸 과제를 주고, 이에 대한 성과를 순위까지 매겨가며 공개하기 시작하자 ‘없는 실적 짜내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 육성이 한두 해에 되는 것도 아니고 키우는 방법도 사업을 해본 대기업이 잘 안다”며 “정부가 단기 성과를 자꾸 강요하니 숫자만 억지로 만들어내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청년고용촉진 특별대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정책을 내놓기 무섭게 기업들은 마치 경쟁하듯이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에 보여주기 위해 급하게 방안을 내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온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