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근대성 못 벗은 기업 '국적 타령'
최근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둘러싸고 의외로 국적 논란이 일고 있다. 신동주 전(前)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일본어 인터뷰, 기업집단 의사결정 구조의 정상에 있는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의 소재지, 이익 배당의 일본 송금,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한국 기업이다”는 발언 등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그러나 기업 관련 국적 논란은 글로벌 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소비자 불매운동도, 면세점 영업권 제한 검토 시사 등도 매우 잘못된 것들이다. 기업의 국적을 문제삼아 불매운동을 벌일 것 같으면, 우리 국민은 아예 해외 기업의 생산물을 소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의 애플 스마트폰을 구매해서는 안 될 것이고,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도 써서는 안 될 것이며, 중국의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받아서도 안 될 것이다. 다시 쇄국주의(鎖國主義) 나라가 될 것이다.

이익배당의 일본 송금과 관련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가 수탈해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그것은 법인과 개인의 관계일 뿐이다. 이익배당은 주주 개인에게 하는 것이고, 법인 주주에게 배당을 하는 경우에도 결국 투자법인의 주주인 개인에게 최종 귀착된다. 더구나 그 개인들은 다시 신격호 일가다. 그래서 롯데의 이익배당 송금은 새삼 문제삼을 것이 못 된다. 소비자에 대한 열렬한 봉사를 제공한 사람이 그 봉사의 대가를 가져가는 것을 문제삼는다면, 그것은 자유시장경제, 자유무역주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생각이 아닐까.

시장경제에서 그간 민족배타주의는 양면에서 많은 해악을 낳았다. 침략자 쪽에서는 과거 민족사회주의를 추구했던 히틀러가 ‘생활권’을 내세워, 군국주의를 추구했던 히로히토(裕仁)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다. 이 모두 민족배타주의적 사상, 자유무역주의를 무시한 사상의 결과물이었다. 침략적 민족주의 하에서도 어차피 개인은 물건을 사서 써야 하기 때문에 영토확장에서 아무런 득을 얻지 못한다. 피해를 본 쪽이지만, 쇄국주의도 개인 소비자에게 해악을 가져오기는 마찬가지다. 필요한 것, 좋은 것을 얻을 기회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자유무역주의는 국경과 상관없이 외국에서 물건을 사서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평화가 유지된다고 했다. 1945년 연합군의 2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세계가 글로벌 평화질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 자유무역주의의 공감대 위에서였다.

국적과 관련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례가 또 있다. 과거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노동당 정부의 방만한 복지정책 때문에 생긴 막대한 부채를 해소하느라 국영기업들을 매각한 일이 있었다. 영국석유, 영국통신 등 기간산업체까지 매각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기간산업체를 외국자본에 팔자 노동당은 민족배타주의적 반대 선동을 했다. 그러자 대처 총리는 ‘영국에 투자한 자본은 곧 영국 자본’이라는 반론을 폈다. 그런 발상이 국민의 지지를 받았기에 영국은 정부 부채를 줄였고, 경제를 부흥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투자한 롯데 자본도 한국자본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과거 박정희 대통령도 일본에서 돈을 번 롯데의 신격호 회장에게 조국인 한국에 투자할 것을 요청했던 것이고, 롯데가 한국에 투자한 것이다. 그 후 롯데는 국민들에게 봉사했고,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를 장려하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경제영토를 활용하고 있는 한국에서, 아직도 기업의 국적 타령을 하며 배타성을 보이는 것은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일이다. 국민이 나서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들을 자제시켜야 한다.

박종운 < 시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