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유배문화'와 열린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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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의 고난 속에서 열린 태도로 학문 정진한
조선시대 학자들의 업적, 시련 넘는 성숙함 보여줘
조석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조선시대 학자들의 업적, 시련 넘는 성숙함 보여줘
조석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41m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감옥,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커트래즈 섬에 가본 적이 있다. 이곳은 알 카포네를 비롯한 흉악범들을 수감했던 교도소인데, 실제로 가보면 육지와 몇m 떨어져 있지 않다.
당장이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높은 절벽과 빠른 조류, 차디찬 수온으로 탈옥이 불가능한 작은 섬인 앨커트래즈.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그곳에서 자유,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사회의 소중함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엔 유배형이 있었다.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었다. 유배는 공동체를 생활 기반으로 하는 당시 사회에서 죽을 때까지 생활 공동체와 단절돼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유배지에서의 삶은 극도로 쓸쓸하고 고달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 기간 중 지식 탐구에 몰입하면서 빛나는 문화유산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생활 9년 동안 중국의 서체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조형미를 갖춘 추사체를 정립했다. 10개의 벼루에 구멍이 나고, 1000자루의 붓이 닳을 정도로 정진한 결과였다.
다산 정약용도 18년 동안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집필하고, 실학 체계를 집대성했다. 다산의 형 정약전은 같은 시기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다. 두 형제는 유배지에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했고,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 정약전이 이때 쓴 ‘자산어보’도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암 송시열도 유배지에서 지역 주민에게 글을 가르쳤고, 한자를 모르는 아녀자들을 위해 ‘사서삼경’과 ‘주자가례’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유배문화’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선진 지식을 전파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시련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성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거대한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때 내적으로 성숙해질 뿐 아니라 위대한 업적도 남길 수 있다.
조석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seok.cho@khnp.co.kr >
당장이라도 탈출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높은 절벽과 빠른 조류, 차디찬 수온으로 탈옥이 불가능한 작은 섬인 앨커트래즈.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된 그곳에서 자유, 타인과의 소통, 그리고 사회의 소중함을 절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엔 유배형이 있었다. 사형 다음으로 무거운 형벌이었다. 유배는 공동체를 생활 기반으로 하는 당시 사회에서 죽을 때까지 생활 공동체와 단절돼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유배지에서의 삶은 극도로 쓸쓸하고 고달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 기간 중 지식 탐구에 몰입하면서 빛나는 문화유산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추사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생활 9년 동안 중국의 서체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조형미를 갖춘 추사체를 정립했다. 10개의 벼루에 구멍이 나고, 1000자루의 붓이 닳을 정도로 정진한 결과였다.
다산 정약용도 18년 동안 전남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500여권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저서를 집필하고, 실학 체계를 집대성했다. 다산의 형 정약전은 같은 시기 흑산도로 유배를 떠났다. 두 형제는 유배지에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 의지했고, 학문적 성취를 이뤄냈다. 정약전이 이때 쓴 ‘자산어보’도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생물학 전문 서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우암 송시열도 유배지에서 지역 주민에게 글을 가르쳤고, 한자를 모르는 아녀자들을 위해 ‘사서삼경’과 ‘주자가례’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이들로부터 비롯된 ‘유배문화’는 문화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선진 지식을 전파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시련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성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거대한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 때 내적으로 성숙해질 뿐 아니라 위대한 업적도 남길 수 있다.
조석 <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seok.cho@khnp.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