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 고집에 '수액 외길'…글로벌 제약사에 기술 수출
국내 최초 수액제 개발 성공
수술 못받고 환자들 죽어가자 자금난에도 공장 만들어 공급
"藥다운 藥 만들라"…다각화 안하고 신약개발 집중
출시 6개월만에 항생제 석권…세계 최대 수액제공장 설립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1950년대 중반. 이기섭 이화여대 부속병원 초대 원장이 이기석 대한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척박한 의료현실을 토로했다.
두 사람은 서울 아현동에서 골목길을 두고 마주 보는 집에 살면서 친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모든 게 부족하던 1950년대였지만 의약품은 더 귀할 때였다. 맹장수술을 받고도 링거액이 없어 탈수현상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45년 8월8일 조선중외제약소로 출발한 대한중외제약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주사제와 앰풀을 생산하고 있었다.
“한번 해보세.” 이 사장은 링거액 분석에 들어갔다. 당시 수액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물량이 극히 일부 유통될 정도로 귀한 의약품이었다. 올해 창업 70주년을 맞은 JW중외제약이 56년 동안 수액제 개발에 매달리게 된 시발점이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수액 개발
“링거액, 유리병, 고무마개 세 가지만 있으면 만들 수 있겠는데….”
JW중외제약의 수액제 개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120도의 고압 증기를 30분 이상 견디는 유리병을 만드는 업체를 찾는 것부터가 과제였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때라 변변한 산업시설이 없었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합성수지로 코팅한 고무마개는 규격이 일정하지 않아 들쭉날쭉했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10월 국내 최초로 5% 포도당 수액제 개발에 성공했다. 값싼 국산 수액제가 나오자 “지금 당장 돈 싸들고 갈 테니 제품을 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당시 서울 충무로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은 하루 400여병에 불과했다. 대규모 공장이 필요했지만 회사 사정상 무리였다. 이 사장은 “수액이 없어 수술받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공들여 수액을 개발했는데 여기서 주저앉아서 될 노릇이냐”고 금융회사 설득에 나섰다. 1964년 서울 하월곡동에 신공장을 준공했다.
●사채까지 쓰는 만성적 자금난
‘차라리 이 비행기가 떨어져버리면….’
1971년 4월, 일본으로 기술제휴 계약을 맺으러 갔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창밖을 바라보던 이종호 JW중외제약 명예회장(당시 전무)은 매일 자금 압박과 빚독촉에 시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 경영위기를 겪던 부친은 삼락증권(현 대신증권) 총무이사로 잘나가던 차남을 5년 전 회사로 불러들였다. 만성적인 경영위기를 타개하는 게 그의 과제였다. 하지만 사채를 빌려 쓰는 ‘쳇바퀴 경영’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 명예회장은 “돈 빌리러 다니다 지쳐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잠들어 있는 네 아이를 보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할 정도로 힘든 때였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창업 이래 단 한번도 직원들의 월급이 밀린 적은 없었다. “정해진 날 월급을 주는 것은 종업원과의 최소한의 신뢰”라는 창업주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한눈팔지 않고 ‘수액 생산 외길’
“이놈들아 내가 약 만들랬지, 설탕물 팔라고 했느냐.”
1970년대 초반 자양강장 드링크제가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명예회장은 경영난 타개의 방편으로 관련 상품개발 계획을 부친에게 건의했다가 꾸중만 들었다. 당시 폐암 투병 중이던 부친은 제약업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다. “생명을 다루는 제약기업은 이윤도 중요하지만 약다운 약을 생산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강조하던 그였다. JW중외제약이 사업 다각화에 눈을 돌리지 않고 수액제와 신약 개발 외길을 고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창업주의 정신 때문이다.
그 덕분에 중외제약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신약 개발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9년 2년여간의 연구개발 끝에 국내 최초의 합성 항생제 ‘리지노마이신’을 개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당시 시장에서 독주하던 ‘테라마이신’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했지만 약효가 뛰어나 6개월 만에 항생제 시장을 석권했다. 1992년에는 국내 최초로 한·일 합작 신약연구소인 ‘C&C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를 발판 삼아 2001년에는 국산 3호 신약 항생제 ‘큐록신’ 허가를 획득했다.
수익성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수액제사업은 영양수액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1980년대 들어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2006년에는 1600억원을 투자해 충남 당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수액제공장을 지었다.
글로벌 제약사에 수액제 개발 노하우를 수출하기도 했다. JW중외제약은 2013년 세계 최대 수액제회사인 박스터와 기술 수출 및 제품 독점 수출계약을 맺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