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정 대표 "3세 승계 기업 노리는 헤지펀드 많아 지분정리 등 도울 PEF 역할 커질 것"
“삼성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 공방, 롯데그룹 경영권 갈등 등에서 보듯 국내 대기업의 승계작업이 투명하고 시장 친화적으로 이뤄지는가가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대기업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사모펀드(PEF)의 역할이 한층 커질 겁니다.”

임석정 JP모간 한국대표(55·사진)는 국내 투자은행(IB)업계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28년간 IB업계에 몸담아 숱한 인수합병(M&A)과 자본조달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가 갑자기 PEF업계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IB업계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임 대표는 오는 10월 초 글로벌 PEF 운용사인 CVC캐피털파트너스로 옮길 예정이다.

13일 중구 정동 한국JP모간 본사에서 만난 임 대표는 “왜 그만두느냐”는 질문에 대뜸 한국 제조업 위기와 PEF의 역할론부터 강조했다. 그는 “당분간 2, 3세의 경영승계와 맞물려 지배구조 재편에 들어가는 기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수천억~수조원의 자금을 보유한 PEF와의 협력관계가 긴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PEF가 승계작업과 구조조정 과정에서 뒤따르는 계열사 매각과 지분정리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국의 맹추격으로 정보기술(IT) 분야와 자동차 휴대폰 등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PEF가 기업경쟁력을 회복시키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주역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4년 34세의 나이에 한국대표로 임명돼 20년간 한국JP모간을 이끈 임 대표는 ‘가장 창조적인 투자은행가’이자 ‘대한민국 최장수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로 불렸다. 2012년 1월 KCC의 에버랜드 지분 인수와 지난달 대만 2위 금융지주 포선그룹의 현대라이프생명보험 지분 인수 등 예상치 못한 거래들을 성사시키며 한국 IB의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94년 세 명으로 시작한 한국JP모간은 104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한국의 대표 IB로 성장했다.

정작 임 대표는 ‘최장수’란 수식어가 싫었다고 한다. 끊임없이 변해야 살아남는 IB업계에서 현실에 안주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JP모간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IB 대표로 승진할 수 있던 그가 PEF로의 전직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임 대표가 새로 몸담을 CVC캐피털파트너스는 운용자산이 800억달러에 달하는 유럽 최대, 세계 6위 PEF다. 런던 본사 외에 뉴욕 도쿄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23개 도시에 진출해 있다. 임 대표는 2001년 JP모간 계열 PEF가 CVC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이곳과 인연을 맺었다.

CVC는 위니아만도, KFC 등에 투자한 이력이 있지만 그동안 국내에선 미국계, 한국계 PEF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IB업계에선 CVC의 임 대표 영입을 한국시장 투자를 강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35억달러 규모의 아시아 투자펀드를 조성해 실탄도 두둑히 채웠다. 임 대표는 한국 대표이자 글로벌 파트너 겸 회장으로 일하게 된다. CVC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투자위원회 위원 4명 가운데 한 명이 됐다.

임 대표는 “CVC가 지분을 가진 글로벌 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국내 기업에 투자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정영효/고경봉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