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8·15에 새기는 광복절의 의미
광복(光復)이란 원래 ‘주권을 가진 조국을 되찾는다’는 뜻이니 쉽게 얘기해 ‘독립’, 즉 주권을 가진 온전한 국가로 우뚝 선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헌의회와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8월15일을 처음에는 독립기념일이라 기념했고 곧이어 다른 4대 국경일인 3·1절, 개천절, 제헌절과 일치시키기 위해 광복절(節)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것이 바로 1949년 10월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 공포’였고, 여기에 맞춰 1950년 8월15일에 ‘제2회 광복절’ 행사가 열렸다. 반면 1945년 8월15일은 해방기념일로 기렸다. 일례로 1949년 8월15일 ‘대한민국 독립 1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법에 따라 이 날을 ‘민국 건설 제1회 기념일’이자 ‘제4회 해방일’로 같이 경축하는 날로 명확히 규정했다.

1948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도 중 하나로 기억돼야 한다. 이 땅에서 처음으로 자유선거이자 보통선거가 치러졌다. 유엔 감시 하에 치러진 5·10선거의 의의는 엄청났다. 이날 이전에 한반도에 사는 백성들은 그저 왕이나 일왕의 신민(臣民)이었다. 그러나 선거 이후 이들은 주권을 가진 민주공화국의 국민(國民)으로 변모한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지성(呱呱之聲)이었다.

국제정치학적으로 세계는 아직도 국가주권을 중시하는 ‘베스트팔렌 체제’의 틀 안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1948년 12월12일 유엔총회 표결에서 한국이 국제승인을 받은 것은 국가주권을 얻은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1948년의 막대한 의미를 깡그리 망각하고 대한민국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심지어 한국사 교과서에는 1948년 대한민국의 탄생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란 해괴한 용어를 써가며 일개 행정부의 탄생으로 격하하는 반면, 북한정권의 탄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란 국가의 탄생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한국이 자기정체성을 갖기 위해선 적어도 5·10선거를 기념하는 날과 12월12일 국제승인을 기념하는 날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유엔에서 한국을 승인하는 데 찬성한 국가에 감사서신을 보내는 것도 연례행사로 생각해봄직하다. 돈도 들지 않고 국제승인과 주권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의가 있으니 일석이조라 하겠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한민국 출범을 기리는 날을 일부러 감격적인 해방의 날인 1945년 8월15일에 맞춰서 1948년 8월15일로 정했다. 좋은 의도를 가진 이런 결정이 훗날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광복절은 원래 뜻대로 대한민국 수립(건국 혹은 독립)을 기념하는 날로 유지됐지만 6·25전쟁을 치르면서 혼선이 발생했다. 광복이란 것이 해방과 대한민국 수립을 기념하는 날로 혼용되기 시작했다. 결국은 원래 제헌의회의 의도와 결의에 반한 관행이 어느 순간 자리 잡아 광복절이 1945년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의미가 변질됐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이런 혼선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1945년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도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고 1948년 대한민국의 수립(독립)도 엄청난 중요성을 갖고 있는 사건이며, 두 기념일이 8월15일로 겹친다. 그러면 두 날을 공히 기념하는 날로 광복절의 의미를 두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올해 광복절은 ‘해방 70주년 기념 및 대한민국수립(건국) 67주년 기념 광복절’이란 표현을 쓰는 식의 방안을 조심스레 제의해본다. 해방과 건국은 연속선상에 있는 사건이었고 어느 하나가 덜 중요한 날이라 할 수 없이 공히 소중한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강규형 <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현대사 gkahng@cho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