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항일 투쟁의 영웅' 김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오직 대한 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白凡) 김구의 ‘나의 소원’ 중 한 구절이다.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주석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고, 동학농민운동에 몸담았다가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해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했다. 한국광복군을 중국에서 훈련시키며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한 자력 독립을 희망했지만,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이 같은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949년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 의해 저격당해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 김구
1876년 8월29일 출생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1949년 6월26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김구 주석은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고, 동학농민운동에 몸담았다가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섰다.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해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주석 등을 역임했다. 한국광복군을 중국에서 훈련시키며 일본군과의 전투를 통한 자력 독립을 희망했지만,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이 같은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1949년 서울 종로구 경교장에서 육군 포병 소위 안두희에 의해 저격당해 7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됐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 김구
1876년 8월29일 출생
1931년 한인애국단 조직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1949년 6월26일 별세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