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고 있는 사바이섬. 현지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놀고 있다.
해가 지고 있는 사바이섬. 현지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놀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모아는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다. 직항도 없고 한국 사람도 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바람과 시간이 스스로의 속도를 느슨하게 늦춘 듯한 느낌이다. 이 때문에 이곳에선 다른 차원으로 빨려들었거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취하기 일쑤다. 아름다운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영롱한 섬으로의 여정이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의 섬, 사모아

신(神)이 그린 '자연 수채화'…시간도  바람도 길을  멈추다
대한항공 직항이 있는 피지의 난디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1시간 40분을 더 갔다. 팔레울루 공항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열대우림의 섬 사모아는 초록으로 빛났다. 우폴루(upolu)섬과 사바이(savai’i)섬, 그리고 몇 개의 작은 군도가 거대한 정원처럼 펼쳐졌다. 공항 사람들은 ‘웰컴 투 파라다이스’라며 인사를 건넸다. 자신 있게 ‘천국’이라고 했다. ‘지킬 앤드 하이드’와 ‘보물섬’의 저자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평생 자신만의 낙원을 찾아 여행하다가 정착한 곳, 그의 선택이 탁월하다고 여겨질 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조금씩 속살을 드러냈다. 아늑한 자연은 드라마틱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사모아 사람들은 마성의 매력으로 머무르는 이의 혼을 쏙 빼놓는다.

사모아의 자연과 사람들의 내면에는 ‘파 사모아(fa’a samoa)’의 정신이 굳건히 깃들어 있다. 상대를 존중하고,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전통을 존중하는 그들은 대가족을 이루고 한데 모여 산다. 정원을 가꾸고 길가를 깨끗이 하는 데 열성적이다. 마당에 가족의 무덤을 두고 무덤가에서 빨래를 말리거나 꽃을 둔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살아간다. 꼬마들은 마당에서 풀어 키우는 개, 고양이, 닭, 돼지들과 함께 논다. 자연이 낳은 모든 것을 존중하는 삶의 풍경은 동화 속 그림들을 고스란히 닮았다.

사모아의 아이콘, 토수아 트렌치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토수아 트렌치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할 수 있는 토수아 트렌치
본섬인 우폴루섬과 남단에 있는 토수아 트렌치는 사모아의 아이콘이라 불릴 만큼 신비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토 수아’는 사모아어로 물이 있다는 뜻. 이름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며 수영을 즐길 수 있는 거대한 해구다. 발 디딘 지점에서 30m 아래로 지름 40m 규모의 구멍 안에는 옥빛 바닷물이 고요히 일렁인다. 아찔한 높이와 경사의 나무 사다리를 있는 힘껏 쥐고 내려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포근한 기운에 웃음이 절로 난다.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동동 떠다니는 태아의 기분이 이럴 것 같았다.

수영에 자신 있는 사람들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중간에 점프해 입수한다.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수심과 유속이 달라지지만, 수영에 능하지 않아도 걱정 없다. 덱에 연결된 밧줄을 잡고 아늑하게 일렁이는 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DSLR급의 카메라로 풍경을 담으려면 꼭 현금을 챙겨갈 것! 대자연이지만 사유지이기 때문에 우리 돈으로 10만원가량을 내야 한다.

자연을 오롯이 즐기는 섬, 사바이

우폴루섬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사바이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정을 사바이에서 보냈다. 수도가 있는 우폴루섬에 비해 원시적이고 목가적인 정취가 강하고 무엇 하나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 없어 자연에 온전히 동화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섬에서는 해안도로를 따라 난 길을 에둘러 다녀야 한다. 섬을 관통하는 길은 없다.

섬 북쪽의 화산지대, 거북이와 함께 수영할 수 있는 작은 수영장을 차례로 둘러 본 뒤 남쪽 타가마을에 있는 아푸 아아우(afu aau) 폭포로 이동했다. 열대 우림을 비집고 흐르는 폭포가 있고, 그 아래 맑은 연못이 있어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비가 내려 수온이 낮아진 탓에 수영은 못했지만 수면 위로 빗방울이 퐁당거리는 풍경은 유성이 떨어지는 순간을 마주한 듯 몽환적이었다.

아푸 아아우 폭포에서 불과 5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타가마을의 알로파아가 블로홀(alofa’aga blowholes). 세상에서 가장 크고 많은 분수공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분수공은 해안가의 구멍 뚫린 지반을 통해 거센 파도가 밀려들어 물기둥을 뿜어내는 자연현상을 말한다. ‘부욱부욱’하는 소리가 온몸이 진동할 정도로 크고 낮게 울렸다. 이내 해변 곳곳의 바위 구멍에서 수십m에 달하는 물기둥이 산발적으로 솟구쳐 올랐다.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가장 거센 분수가 솟아날 구멍을 찾아내 코코넛을 던져 넣었다. 사람들이 커다란 물기둥의 힘에 산산조각 나는 코코넛을 보고 놀라면, 마을의 어른들은 아이처럼 깔깔댄다. 분수공으로 던져 넣을 또 다른 코코넛을 가지러 달려가는 그들의 얼굴은 사모아의 자연을 고스란히 닮아 더없이 맑고 순수하다.

자연의 품에 조화롭게 안긴 고급 리조트들

사모아가 미지의 세계,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열대 우림의 섬으로만 알려진다면 그건 다소 억울할 일이다. 뉴질랜드, 호주, 아메리칸사모아에서 즐겨 찾는 휴양지인 만큼 고급스러운 리조트가 많다. 영화 ‘리턴 투 파라다이스’의 배경이 된 해변에 영화 이름을 고스란히 붙인 리턴 투 파라다이스 리조트, 하와이에서 온 세 친구가 조그만 비치바(beach bar)로 시작해 우폴루섬의 최고급 리조트로 성장한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를 가진 코코넛비치클럽(이곳의 레스토랑은 최근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레스토랑 중 하나에 이름을 올렸다), 사모아 유일의 인터내셔널 브랜드 리조트인 쉐라톤 아기그레이 등 최고급 리조트를 비롯해 다양한 등급의 리조트가 우폴루섬과 사바이섬 곳곳에 들어서 있다.

여행 Tip 연중 덥고 습해…5~10월이 여행 적기

한국에서 사모아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피지의 난디공항까지 대한항공 직항을 이용한 뒤 피지 에어웨이즈를 타고 사모아의 수도 아피아까지 가는 방법이 가장 쉽다. 난디에서 아피아까지는 1시간 40분 거리다. 사모아는 날짜 변경 선이 있어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로 알려졌다. 한국과 시차는 5시간. 열대우림 기후의 화산 군도여서 연중 덥고 습하다. 더운 나라에 사는 피지 사람들이 사모아는 진짜 덥다고 말할 정도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우기, 여행은 건기인 5월부터 10월까지가 적합하다. 사모아어와 영어가 공용어다. 화폐는 탈라(tala)를 사용한다. 1탈라는 약 450원.

사모아=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