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의 단편 ‘재채기’를 오세혁 극단 걸판 대표가 연출한 같은 이름의 단막극.
안톤 체호프의 단편 ‘재채기’를 오세혁 극단 걸판 대표가 연출한 같은 이름의 단막극.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는 한국 연극계에서 영국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위상을 가진 작가다. 극작가 겸 연극평론가 김명화 씨는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체호프는 성지와도 같다”고 했다. 체호프가 한국 연극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계 희곡사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그의 4대 장막극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은 한국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만큼이나 자주 상연된다.

하지만 연극인이나 연극팬이 아닌 사람에게 체호프는 극작가보다 단편소설 작가로 친숙하다. 그는 프랑스의 기 드 모파상, 미국의 O 헨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불린다. 평생 500여편의 소설을 썼고 이 중 400여편이 단편이다. 희곡은 18편을 남겼다.

삶의 애환과 인생의 허무함을 사실주의적인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체호프의 단편 명작들이 무대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오는 19~30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무대에 오르는 ‘체호프의 단편은 이렇게 각색된다’에서다.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올해 ‘바냐 삼촌’ ‘갈매기’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체호프 무대다.

‘재채기’ ‘드라마’ ‘베로치카’ ‘혀를 잘못 놀린 사나이’ ‘철없는 아내’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마세요’ ‘적’ 등 7편의 단편을 10~25분 길이 단막극으로 만들어 연이어 상연한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7편 모두 연극 대본으로 각색했다. 연출은 이 감독과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오세혁 극단 걸판 대표, 정성훈 극단 공연제작센터 단원 등 네 명이 나눠 맡았다.

이 감독은 ‘철없는 아내’ ‘사람 데리고 장난치지 마세요’(원제 우유부단)에서 치졸하게라도 어떻게든 살아가며 삶을 긍정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오 대표는 ‘재채기’와 ‘드라마’에서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보통사람들의 희비극적인 상황을 특유의 재기발랄함으로 펼쳐낼 예정이다. 김 대표는 ‘적’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인간의 이기심과 소통 불가의 모습을 탐구하고, 정씨는 ‘베로치카’와 ‘혀를 잘못 놀린 사나이’를 통해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희비극을 파고든다.

공연을 기획한 이 감독은 “체호프의 단편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역동적이고 개성적인 단막극으로 재탄생한다”며 “우스꽝스럽고 솔직한 체호프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민수 정연진 황현아 송의동 한덕호 이슬비 김아라나 등 출연. 1만5000~3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