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 배우 전지현이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로 열연한 영화 ‘암살’이 지난 15일 광복절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정신없이 바빠진 또 한 사람이 있다. 10년째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과 사상을 연구 중인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사진)이다.

심 소장은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 캐릭터 자문을 맡았다. 그는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영화의 성공으로 그동안 외면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재조명받는 기회를 얻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또 “망국의 설움 앞에 남녀 구분 없이 맞섰던 용감한 여성들의 진실을 찾는 게 내 임무”라고 덧붙였다.

‘암살’ 제작진이 심 소장을 찾은 것은 지난해 초였다. 영화 제목과 줄거리는 알려주지 않은 채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고 싶은데 참고 자료가 너무 없다”고 하소연했다. 제작진에 강원 일대에서 여성 최초로 의병대장 활동을 했던 윤희순 의사 평전을 비롯해 사이토 마코토 조선총독 암살을 기도했던 남자현 지사, 공군비행사였던 권기옥 지사 등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여태까지 없었던 캐릭터를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러 인물의 성격을 복합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여성이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음을 증명한 계기가 됐죠.”

심 소장은 우연하게 여성 독립운동가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5년 부산대 대학원에서 백범 김구 관련 근현대사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돌연 한의학을 공부하겠다고 선언하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공부하다 보면 ‘왠지 이게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방황할 때가 생기잖아요. 그때가 그랬어요. 어느 날 고시원에서 윤희순 의사를 다룬 TV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이거다’ 싶어 한의학 공부를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여성 독립운동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죠.”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세운 것은 2009년이었다. 심 소장은 “참고 자료가 워낙 부족한 분야다 보니 무조건 현장을 뛰며 유족의 증언을 듣고, 관련 기록이라면 무엇이든 뒤지는 방법밖엔 없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248명. 하지만 심 소장에 따르면 국가유공자 외에도 활동 기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가 1931명에 달한다. 심 소장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가부장적 문화 영향으로 기록을 찾기 어려운 데다 일제강점기에도 여성은 양형 기준이 남성보다 조금 낮았기 때문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위한 별도 유공자 기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