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승계 딜레마와 멸사헌신의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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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계는 기업 운명 좌우할 핵심사안
합리적 안정적 후계구도 사전 정비
국민경제 흔들 경영권 분쟁 막아야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합리적 안정적 후계구도 사전 정비
국민경제 흔들 경영권 분쟁 막아야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대 기업의 이미지는 늘 한 가지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명예와 권력까지 장악한다. 그런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후계자를 정하는 일이다. ‘집단행동의 논리’로 유명한 맨서 올슨은 최후의 유작이 된 권력과 번영이라는 책에서 절대군주제에는 ‘세습 위기’가 내재돼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슨이 남긴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왕조뿐 아니라 독재정권, 민주정, 그리고 기업 세계에도 잘 들어맞는다.
장자 세습은 자연의 순리처럼 통용되지만 왕조에서조차 지키기 쉽지 않아 후계자 지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확립된 대물림의 원칙이나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주주자본주의 환경에서 지배적 지분 확보를 위한 정교한 후계작업이 있어도 그 실상은 창업자 등 선대 총수의 다분히 자의적인 선택의 결과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또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도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후계 구도를 사전에, 즉 적기에 설계·구축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의 장래 전망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 경영의 조건이다. 그러나 재벌 총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배권이 제한되거나 이전 또는 누수되는 과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총수를 앉힐 수 있는 힘은 결국 현재의 총수를 밀어내는 쪽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 순탄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그 후계자가 가업을 물려받아 번창하게 만들 역량을 갖췄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물론 일종의 ‘주주 정치’ 과정을 통해 조정이나 심판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 합리적인 분업체제를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젊은 후계자들이 선대의 업적을 능가해야 한다는 압력과 부담 때문에 과도한 사업 확장 등 무리수를 두다가 실패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세습의 위기는 재벌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피하기 어려운 숙명적인 거래비용일 뿐만 아니라 그 위기를 어떻게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사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한 기업,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결국 후계자를 제대로 잘 뽑을 수 있는 기업이다. 안정적 계승장치를 갖춰 세습 위기를 극복하고 유효적절한 후계 구도를 구축한 기업은 번영을 향해 순항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분열과 해체의 위기를 겪는 등 후유증을 앓고 쇠퇴하고 말 것인데, 결국 시장에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의 숙명적인 세습 위기를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게 해줄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세습의 위기는 막장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벌어진다. 하지만 냉철히 들여다보면 이 위기는 사실 사전에 예측 가능하다. 만일 현명한 총수라면 적어도 후계그룹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시점까지는, 변화하는 대내외적 경영 여건 속에서 기업의 비전을 구현할 최적임자를 후계자로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제도화해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후계자의 기준이나 조건을 미리 정해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전문경영인과 역할 배분의 방향도 미리 구체화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합리적인 선택들이 오로지 총수의 자기 절제와 멸사헌신(滅私獻身)의 결단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결국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걸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총수가 지배구조상 견제를 받을 수는 있어도 총수의 지배를 압도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 기형적 지배구조를 탈피하겠다는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 관건이 되겠지만, 차선책으로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후계 구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과 조건을 부과하는 정책 대안을 궁리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업료는 이미 충분히 치르지 않았나.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
장자 세습은 자연의 순리처럼 통용되지만 왕조에서조차 지키기 쉽지 않아 후계자 지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확립된 대물림의 원칙이나 기준이 없는 경우가 많다. 주주자본주의 환경에서 지배적 지분 확보를 위한 정교한 후계작업이 있어도 그 실상은 창업자 등 선대 총수의 다분히 자의적인 선택의 결과인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또 이를 막을 수 있는 대안도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후계 구도를 사전에, 즉 적기에 설계·구축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기업의 장래 전망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 경영의 조건이다. 그러나 재벌 총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배권이 제한되거나 이전 또는 누수되는 과정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총수를 앉힐 수 있는 힘은 결국 현재의 총수를 밀어내는 쪽으로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습이 순탄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그 후계자가 가업을 물려받아 번창하게 만들 역량을 갖췄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물론 일종의 ‘주주 정치’ 과정을 통해 조정이나 심판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 합리적인 분업체제를 갖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젊은 후계자들이 선대의 업적을 능가해야 한다는 압력과 부담 때문에 과도한 사업 확장 등 무리수를 두다가 실패할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세습의 위기는 재벌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피하기 어려운 숙명적인 거래비용일 뿐만 아니라 그 위기를 어떻게 얼마나 잘 수습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사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강한 기업,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결국 후계자를 제대로 잘 뽑을 수 있는 기업이다. 안정적 계승장치를 갖춰 세습 위기를 극복하고 유효적절한 후계 구도를 구축한 기업은 번영을 향해 순항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분열과 해체의 위기를 겪는 등 후유증을 앓고 쇠퇴하고 말 것인데, 결국 시장에서 심판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의 숙명적인 세습 위기를 회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게 해줄 대안은 없는 것일까.
세습의 위기는 막장드라마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벌어진다. 하지만 냉철히 들여다보면 이 위기는 사실 사전에 예측 가능하다. 만일 현명한 총수라면 적어도 후계그룹이 가시권에 들어오는 시점까지는, 변화하는 대내외적 경영 여건 속에서 기업의 비전을 구현할 최적임자를 후계자로 뽑을 수 있는 방법을 제도화해 예측 가능성과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후계자의 기준이나 조건을 미리 정해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전문경영인과 역할 배분의 방향도 미리 구체화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합리적인 선택들이 오로지 총수의 자기 절제와 멸사헌신(滅私獻身)의 결단에 의존한다는 데 있다.
결국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걸겠는가 하는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총수가 지배구조상 견제를 받을 수는 있어도 총수의 지배를 압도하는 기업의 지배구조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미래를 위해 기형적 지배구조를 탈피하겠다는 투철한 기업가 정신이 관건이 되겠지만, 차선책으로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인 후계 구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준과 조건을 부과하는 정책 대안을 궁리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수업료는 이미 충분히 치르지 않았나.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