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GE, 21세기로 오다
GE는 자타 공인 세계 1등 기업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1878년 설립한 에디슨종합전기회사가 1892년 톰슨휴스턴전기회사와 합병해 탄생했으니 3세기째 기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에 비하면 여전히 ‘굴뚝’ 냄새가 난다. 그리고 ‘중성자 잭’으로 불리던 잭 웰치 회장(재임 1981~2001)의 존재감이 워낙 컸던지라 비정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도 여전히 남아 있다.

10%룰 없애고 피드백 강화

그런 GE가 회사 운영의 뼈대인 인사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10%룰’로 대표되는 웰치 시대의 인사평가 방식을 30년 만에 전면 혁신했다는 소식(한경 8월20일자 A2면)이다. 10%룰은 매년 평가를 통해 최하위 10% 그룹을 도려냄으로써 성과 지향의 경쟁력 있는 조직을 만들려는 평가 방식이다. 평가는 재무적 목표에 대한 정량적 평가인 ‘성과’ 평가와 4E, 성실성 등을 기준으로 한 정성적 평가인 ‘잠재력’ 평가로 이뤄진다. 잠재력의 지표인 4E는 결단력(edge) 열정(energy) 활력(energize) 실행력(execute) 등이다. 이 평가를 통해 상위 20%는 핵심 정예 인재, 70%는 지속적 육성 대상, 그리고 나머지 10%는 해고 대상인 꼬리집단으로 분류한다.

간부들에겐 하위 10%를 선별하는 것이 고통이었다. 실제 제도 시행 3년차 때는 직원들의 성과가 너무 좋아 도저히 10%까지 저성과자를 채울 수 없었다. 그러나 ‘중성자 잭’은 무조건 10%를 강요했다. 그것이 GE의 20세기였다. 회사가 정한 틀에 맞지 않는 저성과자는 무조건 도려내는 비정한 시스템이었다. 1등 GE가 그렇게 하니 대유행처럼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표준이 됐다.

이런 10%룰이 폐기되는 것은 시대를 바꾸는 역사적 사건이다. GE는 인사와 평가에 관한 한 웰치 시대의 유산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 요인은 기술이다. 전사 직원들의 성과와 활동이 ERP(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안에 들어 있고 사내 통신망과 연결돼 있어 이제 성과평가를 수시로 할 수 있다.

연간 평가 자체가 무의미해진 것도 상당한 계기가 됐다. 평가와 보상 시기가 연간이 아니라 분기로 당겨지고 있는 것이 최근 추세다. 또 신세대 직장인들의 달라진 요구도 구식 평가 방식의 폐기를 가속화했다. 소셜미디어로 항상 네트워크 선상에서 연결돼 있는 젊은 사원들은 연말에 한 번 있는 A, B, C 평가보다는 페이스북에서처럼 상사가 수시로 보내는 ‘좋아요!’ ‘잘했어요!’ 등의 메시지를 실질적인 평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권위적 잭 웰치 시대와 결별

21세기는 저성장의 시대다. 그저 땀만 흘려서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뭔가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차별화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다. 회사가 틀을 정해놓고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10%를 도려내는 건,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없는 보수적이고 딱딱한 시스템이었다.

구글은 회사에서 먹는 간식이나 밥이 전부 공짜다. 애플엔 집에 가지 않고 밤새워 자기 일을 하는 ‘또라이’들이 넘친다. ‘늙은 기업’ GE는 옛방식으론 이런 인재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훨씬 더 인간적이고 생동감 있는 인사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인재 쟁탈전이 GE를 21세기형 기업으로 바꾼 모양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