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철주 화백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에 전시된 신작 ‘신몽유도원도’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석철주 화백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에 전시된 신작 ‘신몽유도원도’를 설명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현대적 화풍의 한국화가 석철주 화백(65)은 16세에 부친의 권유로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년) 문하에 들어가 전통산수화를 익혔다. 청전에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20세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첫 입선하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상을 받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85년 탈춤의 동적인 장면을 담은 작품으로 첫 개인전을 연 그는 1990년 질박한 장독을 표현한 ‘독’ 시리즈를 시작으로 조각보와 골무 등을 그린 ‘규방’ 연작(1995년), 자연 이미지를 담은 ‘생활 일기’(1999년), ‘신몽유도원도’ 시리즈(2005년) 등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인 조형성을 병립한 작품을 잇달아 내놓으며 ‘융합(퓨전) 산수’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 융합산수는 실물 그대로 묘사하는 전통 산수화와 달리 서양 재료인 아크릴과 캔버스를 사용해 한국적인 정체성을 담아내는 사의적(寫意的) 화풍이다.

올해로 화업 50년을 맞은 석 화백이 오는 26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박물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시작한다. ‘몽중몽(夢中夢)’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초창기 독 시리즈부터 최근 작업한 신몽유도원도까지 작품 100여점을 건다.

‘21세기 안견’을 자처하는 그는 “지난 50년 동안 그림작업은 마치 화두를 들고 일념에 몰두해 일순간 깨침을 얻는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기보다 마음 닦는 수행이라 생각하기에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 청전의 회초리를 맞으며 한국의 다양한 얼굴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전통 산수화보다 안평대군이 꿈꿨던 이상향을 화면에 토해내려 부단히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석 화백이 청전을 만난 지 40년 되던 2005년부터 10년째 그리고 있는 신몽유도원도는 자연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캔버스에 생명력과 서정성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준봉들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는 “서양화의 ‘덧칠’에 한국화의 ‘삭임’ ‘여백’ ‘스밈’ ‘번짐’ 효과를 아울렀다”고 했다. 아크릴로 흰색이나 검은색의 바탕색을 칠한 뒤 그 위에 바탕색과 반대되는 색을 덧칠한다. 이 덧칠한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맹물에 적신 붓으로 대상을 그리고, 그리기가 끝나면 재빨리 마른 붓으로 여러 번 붓질하는 과정을 거친다. 억지로 쌓아 만드는 형상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오는 풍광이다. 이른바 ‘맹물의 미학’이다. 붓질로 한국화의 수묵성을 견지함으로써 된장처럼 안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맛을 던져준다.

물론 작가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화법 외에도 색감, 내용 등에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구상성을 좀 더 강화하고, 색감도 다채롭게 사용한다. 그래서 몽롱하고 아련한 화면 분위기는 더 경쾌해졌다.

석 화백은 이번 전시에 50년 작업한 작품으로 구성한 대형 설치 작품을 내보인다. 가로 세로 7.5m 크기의 방에 조그만 창문 하나를 만들어 바닥에 풀을 소재로 한 생활일기 작품을 깔고, 벽에는 독 그림을 여러 점 걸었다. 또 조그만 창문으로 건너편에 걸린 신작 신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옹기와 풀, 산 등 그림 속 소재들은 전통 산수화에 대한 향수이자 생명력을 표현하는 기호”라며 “누구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흉중구학(胸中丘壑·가슴 속의 언덕과 골짜기)’을 그려 감동을 응축해냈다”고 설명했다.

현역 화가로 활동을 펼치던 27세 때 돌연 대학에 들어간 그는 “스승 청전은 암투병 중에도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정신을 가다듬어 그림을 그렸다”며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고 탄생된다”고 덧붙였다.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해 학고재화랑, 금산갤러리, 박영덕화랑, 동산방화랑이 후원하는 이 전시회는 오는 10월18일까지 이어진다. (02)3789-6317

김경갑 기자 kkk1010@hankyung.com